1. 개요
아프리카코끼리(Loxodonta africana)는 오늘날 땅 위를 걷는 동물 가운데 가장 크고 무거운 종이에요. 다 자란 수컷은 어깨높이가 3m를 넘고 몸무게가 6톤에 이르기도 해요. 정확한 이름은 '아프리카사바나코끼리' 또는 '아프리카덤불코끼리'이며, 중앙·서아프리카 열대우림에 사는 둥근귀코끼리(숲코끼리)와는 별개의 종으로 구분돼요. 이 문서에서 '아프리카코끼리'라고 하면 사바나코끼리를 가리켜요.
코끼리는 단지 덩치만 큰 동물이 아니에요. 나이 든 암컷 우두머리가 이끄는 가족 무리를 이루고, 수십 년 동안 물웅덩이의 위치와 친구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사람 귀에 들리지 않는 낮은 소리로 수 km 떨어진 동료와 소통해요. 나무를 쓰러뜨리고 우물을 파고 씨앗을 퍼뜨려 사바나의 모습을 바꾸기 때문에 '생태계 엔지니어'라고도 불려요.
하지만 상아를 노린 밀렵과 서식지 감소로 아프리카코끼리는 지난 100년 동안 크게 줄었어요. IUCN은 2021년 평가에서 사바나코끼리를 위기(EN), 숲코끼리를 위급(CR)으로 지정했어요. 코끼리를 지키는 일은 사바나 생태계 전체를 지키는 일이기도 해요.
2. 이름과 분류

Giles Laurent · CC BY-SA 4.0
속명 Loxodonta는 그리스어로 '비스듬한 이빨'이라는 뜻이에요. 아프리카코끼리의 어금니 씹는 면에 마름모꼴 무늬가 있는 것을 보고 붙인 이름이에요. 아시아코끼리의 어금니에는 좁고 평행한 띠무늬가 있어 쉽게 구별돼요. 영어 elephant는 그리스어 elephas에서 왔는데, 원래 상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해요.
한국어 '코끼리'는 '코'와 길다는 뜻의 옛말 '길이'가 합쳐진 말로, '코가 긴 동물'이라는 뜻이라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어요. 중세 국어 문헌에는 '고키리' 같은 형태가 나와요. 한자로는 상(象)이라고 쓰는데, 이 글자 자체가 코끼리의 모양을 본뜬 상형 문자예요. '현상', '인상', '상징'처럼 모양이나 형상을 뜻하는 단어에 이 글자가 쓰이는 것도 흥미로운 연결이에요.
2.1. 현생 코끼리 세 종
오랫동안 아프리카코끼리는 한 종으로 여겨졌지만, 유전자 연구가 쌓이면서 사바나코끼리와 숲코끼리를 별개의 종으로 나누는 견해가 자리 잡았어요. 두 종은 수백만 년 전에 갈라졌다는 연구도 있어요. 다만 두 종이 만나는 경계 지역에서는 잡종이 태어나기도 해요.
| 종 | 분포 | 어깨높이(수컷) | 특징 |
|---|---|---|---|
| 아프리카사바나코끼리 | 아프리카 동부·남부 사바나 | 약 3~4m | 가장 큼, 귀가 크고 끝이 뾰족함, 상아가 바깥으로 휨 |
| 둥근귀코끼리(숲코끼리) | 중앙·서아프리카 열대우림 | 약 2.4~3m | 귀가 둥글고 작음, 상아가 곧고 아래를 향함 |
| 아시아코끼리 | 인도·스리랑카·동남아시아 | 약 2.5~3.2m | 귀가 작음, 등이 둥긂, 암컷은 대부분 상아가 없음 |
코끼리의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은 놀랍게도 바다소(듀공·매너티)와 작은 바위너구리(하이랙스)예요. 이들은 모두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아프로테리아' 계통에 속해요.
3. 진화
코끼리를 포함한 장비목(Proboscidea)의 역사는 약 6,0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돼요. 가장 오래된 조상 중 하나로 알려진 에리테리움(Eritherium)은 몸무게가 몇 kg 정도로, 지금의 코끼리와는 전혀 닮지 않은 작은 동물이었어요. 그 뒤 약 3,700만 년 전 무렵의 모에리테리움(Moeritherium)은 하마처럼 물가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여요.
시간이 지나며 장비목은 몸집이 커지고, 코가 길어지고, 앞니가 상아로 발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어요. 아래턱에 삽처럼 넓은 상아를 가진 플라티벨로돈, 아래턱 상아가 아래로 휘어진 디노테리움, 털이 덥수룩한 마스토돈 등 다양한 형태가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로 퍼졌어요. 한때는 남극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 장비목이 살았어요.
현생 코끼리가 속한 코끼리과는 약 700만~5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타났어요. 이 무렵 아프리카코끼리 계통, 아시아코끼리 계통, 그리고 매머드 계통이 차례로 갈라졌어요. 흥미롭게도 털매머드는 아프리카코끼리보다 아시아코끼리와 더 가까운 친척이에요. 매머드는 대부분 약 1만 년 전 무렵 사라졌지만, 시베리아 북쪽의 브랑겔섬에서는 약 4천 년 전까지 작은 무리가 살아남았어요. 이집트에서 피라미드가 세워지던 시기에도 지구 어딘가에는 매머드가 살고 있었던 셈이에요.
유럽에는 곧은상아코끼리처럼 지금의 아프리카코끼리보다 훨씬 큰 종도 살았어요. 지중해의 섬들에서는 반대로 몸집이 1m 남짓으로 작아진 '난쟁이 코끼리'가 진화했는데, 먹이가 제한된 섬 환경에서 몸집이 작아지는 '섬 왜소화'의 대표적인 예예요.
4. 분포와 서식지

아프리카사바나코끼리는 사하라 사막 남쪽의 30여 개 나라에 흩어져 살아요. 가장 많은 수가 사는 곳은 남부 아프리카예요. 보츠와나는 약 13만 마리 안팎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끼리가 사는 나라로 꼽히고, 짐바브웨, 잠비아, 나미비아, 앙골라를 잇는 카방고-잠베지 국경보전지역(KAZA)에 아프리카 코끼리의 절반 가까이가 산다고 해요. 동아프리카에서는 탄자니아와 케냐가 중요한 서식지예요.
코끼리는 적응력이 뛰어나 사바나와 초원뿐 아니라 관목지, 강가의 숲, 늪지, 산지 숲, 그리고 나미비아와 말리의 사막 지대에도 살아요. 나미비아 북서부의 '사막 코끼리'는 물을 찾아 하루 수십 km를 걷고, 며칠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 버티기도 해요. 말리의 구르마 지역 코끼리는 사헬 지대를 따라 해마다 수백 km를 순환하며 이동하는 것으로 유명해요. 킬리만자로산 비탈에서는 해발 4,000m 이상에서도 코끼리 흔적이 발견된 적이 있어요.
과거에는 코끼리가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부터 남아프리카 희망봉까지 대륙 거의 전체에 살았어요. 북아프리카 코끼리는 로마 시대 이후 사라졌고, 서아프리카에서도 대부분의 개체군이 작고 고립된 상태로 남았어요. 지금은 보호구역과 그 주변에 몰려 있으며, 국경을 넘나드는 이동 경로가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예요.
5. 신체 특징
아프리카코끼리는 기둥 같은 네 다리로 거대한 몸을 받쳐요. 발바닥에는 두꺼운 지방 쿠션이 있어 체중을 분산시키고, 덕분에 6톤 가까운 몸으로도 놀라울 만큼 조용히 걸어요. 발가락은 다섯 개지만 대부분 살 속에 묻혀 있어요. 코끼리는 뛰거나 점프하지는 못하지만, 빠르게 걸을 때 시속 25km 안팎까지 속도를 낼 수 있어요.
| 구분 | 수컷 | 암컷 |
|---|---|---|
| 어깨높이 | 약 3~4m | 약 2.2~2.7m |
| 몸무게 | 약 4~7톤 | 약 2~3.5톤 |
| 몸길이(코 제외) | 약 6~7.5m | 약 5~6m |
| 상아 무게(한 쪽) | 보통 20~45kg, 큰 것은 그 이상 | 보통 수컷보다 훨씬 가벼움 |
지금까지 기록된 가장 큰 코끼리는 1950년대 앙골라에서 사냥된 수컷으로, 어깨높이 약 4m, 몸무게 약 10톤으로 추정돼요. 이 표본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5.1. 코
코끼리의 코는 윗입술과 코가 길게 합쳐져 생긴 기관으로, 뼈 없이 근육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요. 근육 다발의 수는 수만 개로 추정되고, 덕분에 사방으로 자유롭게 구부리고 늘이고 비틀 수 있어요. 아프리카코끼리의 코끝에는 손가락 같은 돌기가 위아래로 두 개 있어서 작은 열매나 풀 한 줌을 집을 수 있어요.
코는 숨쉬기와 냄새 맡기는 물론, 먹이를 따서 입에 넣고, 물을 빨아들여 입에 뿌려 마시고, 몸에 흙과 물을 뿌리고, 동료를 쓰다듬고, 위협할 때 휘두르는 등 거의 모든 일에 쓰여요. 한 번에 물을 약 8~10리터 빨아들일 수 있다는 연구가 있어요. 코로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는 수백 kg에 이르러요. 깊은 물을 건널 때는 코를 잠망경처럼 물 위로 내밀고 숨을 쉬어요. 새끼 코끼리는 처음 몇 달 동안 코를 잘 다루지 못해 자기 코를 밟거나 흔들며 노는 모습이 귀여움을 자아내요.
5.2. 상아·이빨·귀·피부
상아는 위턱의 앞니가 평생 자라서 생긴 거예요. 1/3 정도는 머리뼈 속에 묻혀 있고, 그 안에는 신경과 혈관이 지나가는 신경관이 있어서, 상아를 뽑으면 코끼리가 크게 다치거나 죽어요. 코끼리는 상아로 땅을 파고, 나무껍질을 벗기고, 싸우고, 무거운 물건을 옮겨요. 사람의 오른손잡이·왼손잡이처럼 주로 쓰는 쪽 상아가 더 많이 닳아요.
어금니는 평생 여섯 번 교체돼요. 새 어금니가 뒤에서 앞으로 밀려 나오며 닳은 이를 밀어내는 방식이에요. 마지막 여섯 번째 어금니가 닳아 없어지면 먹이를 제대로 씹지 못하게 되어, 늙은 코끼리가 굶주리는 원인이 되기도 해요.
큰 귀는 단순히 소리를 듣는 기관이 아니라 거대한 냉각판이에요. 귀 뒤쪽에는 혈관이 그물처럼 퍼져 있어, 귀를 펄럭이면 혈액의 열이 공기 중으로 빠져나가요. 덥고 건조한 사바나에 사는 아프리카코끼리의 귀가 아시아코끼리보다 큰 이유예요. 피부는 두께가 2~3cm에 이르지만 의외로 예민해서 벌레에 물리거나 햇볕에 타기 쉬워요. 그래서 진흙 목욕과 흙 뿌리기로 피부를 보호해요. 피부의 깊은 주름과 균열은 물기를 오래 머금어 몸을 식히는 데 도움을 줘요.
6. 생태와 습성

Bernard DUPONT from FRANCE · CC BY-SA 2.0
코끼리는 하루의 대부분, 많게는 16~18시간을 먹는 데 써요. 잠은 하루 몇 시간만 자는데, 야생 코끼리를 추적한 연구에서는 평균 2시간 정도로, 포유류 가운데 가장 적게 자는 편이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주로 선 채로 자고, 안전하다고 느낄 때만 옆으로 누워 깊이 자요.
하루 이동 거리는 먹이와 물 사정에 따라 몇 km에서 수십 km까지 달라져요. 건기에는 물웅덩이와 강을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하고, 우기에는 새로 돋은 풀을 따라 넓게 흩어져요. 코끼리는 하루에 물을 100~200리터 가까이 마시고, 물이 부족하면 마른 강바닥을 상아와 발로 파서 지하수를 찾아내요. 이렇게 생긴 웅덩이는 다른 동물들에게도 귀중한 물 공급원이 돼요.
6.1. 가족 무리와 우두머리
코끼리 사회의 기본 단위는 어미와 딸, 자매, 그리고 그 새끼들로 이루어진 가족 무리예요. 보통 10마리 안팎이고, 무리를 이끄는 것은 가장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암컷 우두머리(매트리아크)예요. 우두머리는 가뭄 때 어디로 가야 물이 있는지, 어떤 동물이 위험한지, 어떤 사람들이 위협적인지를 기억하고 무리를 이끌어요. 케냐 암보셀리의 연구에서는 나이 많은 우두머리가 이끄는 무리가 사자 울음소리의 위험도를 더 정확히 판단하고 적절히 대응한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여러 가족 무리는 서로 친척 관계로 이어진 '친족 집단'을 이루고, 건기에는 수백 마리가 한곳에 모이기도 해요. 반면 수컷은 10~15살 무렵 가족을 떠나 혼자 지내거나 수컷끼리 느슨한 무리를 이루어요. 어린 수컷은 나이 든 수컷에게서 행동을 배우는데, 남아프리카에서 나이 든 수컷이 없는 곳으로 옮겨진 젊은 수컷들이 코뿔소를 공격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다가, 나이 든 수컷을 들여오자 진정되었다는 사례가 유명해요.
6.2. 머스트
다 자란 수컷 코끼리는 해마다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머스트(musth)'라는 특별한 상태에 들어가요. 이 기간에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평소의 몇 배로 치솟고, 눈과 귀 사이의 관자샘에서 끈적한 분비물이 흘러내리며, 오줌을 계속 흘리고 독특한 냄새를 풍겨요. 머스트 중인 수컷은 매우 공격적이어서 다른 수컷과 격렬하게 싸우고, 발정한 암컷을 찾아 먼 거리를 돌아다녀요. 암컷은 머스트 중인 나이 든 수컷을 짝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7. 먹이
코끼리는 완전한 초식동물이에요. 다 자란 코끼리는 하루에 약 100~300kg의 식물을 먹어요. 우기에는 주로 풀을 뜯고, 건기에는 나뭇잎과 잔가지, 나무껍질, 뿌리, 과일을 더 많이 먹어요. 아카시아, 모파네, 바오바브 같은 나무를 즐겨 먹으며, 바오바브 줄기의 섬유질 속에 저장된 물을 얻기 위해 상아로 줄기를 파내기도 해요.
코끼리의 소화 효율은 생각보다 낮아서, 먹은 것의 절반 가까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배설해요. 하루 배설물의 양은 100kg 가까이 되기도 해요. 이 배설물은 소똥구리를 비롯한 수많은 곤충의 먹이이자 집이 되고, 그 안에 섞인 씨앗은 멀리 퍼져 싹을 틔워요. 일부 나무는 씨앗이 코끼리의 소화관을 통과해야 싹이 잘 트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코끼리는 미네랄을 보충하기 위해 흙을 먹기도 해요. 케냐 엘곤산의 키툼 동굴에서는 코끼리들이 밤마다 어두운 동굴 깊숙이 들어가 상아로 소금기 있는 바위를 긁어 먹는 모습이 관찰됐어요. 오랜 세월 동안 코끼리들이 동굴을 더 깊게 파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먹이를 얻는 과정에서 코끼리는 사바나의 모습을 바꿔요. 나무를 쓰러뜨리고 덤불을 헤치면 숲이 초원으로 바뀌고, 그 초원은 얼룩말과 누 같은 풀 뜯는 동물에게 좋은 먹이터가 돼요. 반대로 코끼리가 너무 좁은 보호구역에 몰리면 나무가 지나치게 줄어 다른 동물의 서식지가 사라지는 문제도 생겨요.
8. 번식과 일생

Charles J. Sharp · CC BY-SA 4.0
코끼리는 육상동물 가운데 임신 기간이 가장 길어요. 암컷은 약 22개월, 거의 2년 동안 새끼를 품어요. 보통 한 번에 한 마리를 낳고, 쌍둥이는 매우 드물어요. 갓 태어난 새끼는 어깨높이 약 90cm, 몸무게 약 90~120kg이에요. 태어난 지 한 시간 남짓이면 일어서고, 며칠이 지나면 무리를 따라 걸어 다닐 수 있어요.
새끼는 어미뿐 아니라 이모, 언니, 사촌 등 가족 모든 암컷의 보살핌을 받아요. 이렇게 육아를 돕는 젊은 암컷을 '알로마더(allomother)'라고 불러요. 알로마더는 새끼를 지키고 진흙탕에서 꺼내 주고, 이를 통해 자기도 미래의 육아를 연습해요. 위험이 닥치면 무리는 새끼를 가운데에 두고 둥글게 둘러싸 지켜요.
| 단계 | 나이 | 특징 |
|---|---|---|
| 신생아 | 0~3개월 | 젖만 먹음, 코 사용이 서툶 |
| 유아기 | 3개월~2살 | 풀을 먹기 시작하지만 젖도 계속 먹음 |
| 젖떼기 | 보통 2~4살 | 동생이 태어나면 젖을 완전히 뗌 |
| 청소년기 | 5~15살 | 수컷은 10~15살쯤 가족을 떠남 |
| 번식 시작 | 암컷 10~12살, 수컷 20대 후반 | 수컷은 경쟁 때문에 늦게 번식함 |
| 노년 | 50살 이후 | 마지막 어금니가 닳으면 쇠약해짐 |
암컷은 보통 4~5년에 한 번 새끼를 낳아요. 그래서 한 암컷이 평생 낳는 새끼는 많아야 7~8마리 정도로, 번식 속도가 매우 느려요. 밀렵으로 개체 수가 줄면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예요. 야생 코끼리의 수명은 보통 50~70년이에요. 사람처럼 나이가 들수록 지혜와 기억이 쌓여 무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요.
9. 지능·의사소통·특별한 능력
코끼리의 뇌는 무게가 약 5kg으로 육상동물 가운데 가장 무거워요. 특히 기억과 관련된 해마와 대뇌 피질이 잘 발달해 있어요. '코끼리는 잊지 않는다'는 말처럼, 코끼리는 수십 년 전에 만난 동료의 목소리와 냄새, 먼 곳의 물웅덩이 위치를 기억해요. 탄자니아의 큰 가뭄 때 나이 든 우두머리가 이끄는 무리가 수십 년 전 가뭄 때 갔던 먼 물가로 이동해 살아남았다는 연구가 있어요.
코끼리는 다양한 소리로 소통해요. 나팔 같은 큰 울음은 흥분하거나 놀랐을 때 내고, 일상적인 소통은 대부분 낮게 웅웅거리는 '럼블'로 해요. 럼블에는 사람 귀에 들리지 않는 20Hz 이하의 저주파가 많이 섞여 있어 수 km까지 전달돼요. 코끼리는 이런 진동을 귀뿐 아니라 발바닥과 코끝으로도 느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최근 케냐 연구에서는 코끼리가 특정 개체를 부를 때 개체마다 다른 소리, 즉 이름 같은 신호를 쓴다는 결과가 나와 화제가 되었어요.
코끼리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알아보는 몇 안 되는 동물 중 하나예요. 미국 동물원의 아시아코끼리 실험에서 이마에 그린 표시를 거울을 보며 코로 만지는 행동이 관찰됐어요. 또 나뭇가지로 몸을 긁거나 파리를 쫓고, 물웅덩이를 나무껍질로 덮는 등 도구를 쓰는 모습도 보고됐어요.
죽음에 대한 반응도 유명해요. 코끼리는 죽은 동료의 몸을 코로 만지고 냄새 맡으며 오랫동안 곁에 머물고, 몇 년이 지나 뼈만 남은 곳을 지날 때도 멈춰서 상아와 뼈를 살펴보곤 해요. 다른 동물의 뼈보다 코끼리의 뼈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는 실험 결과도 있어요.
10. 천적과 생존

다 자란 건강한 코끼리를 공격할 수 있는 동물은 거의 없어요. 위협을 받으면 코끼리는 귀를 활짝 펴고 머리를 들어 몸을 더 크게 보이게 하며, 흙을 차고 나팔 소리를 내다가 필요하면 돌진해요. 대부분의 위협은 이런 '흉내 돌진'으로 끝나지만, 진짜 돌진은 사자도 피할 만큼 위험해요.
새끼와 어린 코끼리는 사자, 하이에나, 악어의 공격을 받을 수 있어요. 보츠와나 초베와 사부티 지역에서는 큰 사자 무리가 밤에 어린 코끼리나 젊은 코끼리를 사냥하는 모습이 촬영되기도 했어요. 가뭄 때는 쇠약해진 코끼리가 사냥감이 되는 일이 늘어요.
자연에서 코끼리를 가장 많이 죽이는 것은 가뭄과 굶주림이에요. 큰 가뭄이 들면 어린 새끼와 늙은 코끼리가 먼저 쓰러져요. 2020년 보츠와나 오카방고 델타 일대에서는 300마리 넘는 코끼리가 원인 모를 이유로 떼죽음을 당해 큰 관심을 모았는데, 이후 물웅덩이에서 번식한 남조류(시아노박테리아)의 독소가 원인으로 지목됐어요. 탄저병도 종종 코끼리 집단 폐사를 일으켜요. 그러나 오늘날 코끼리의 생존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존재는 단연 사람이에요.
11. 인간과의 관계
인류와 코끼리의 관계는 수십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요. 초기 인류는 코끼리와 매머드를 사냥하거나 죽은 코끼리의 고기를 먹었고, 매머드 뼈로 집을 짓기도 했어요. 상아는 일찍부터 귀한 재료로 쓰여, 수만 년 전 유럽의 구석기인들은 매머드 상아로 조각품을 만들었어요.
아프리카코끼리를 길들여 이용한 대표적인 예는 고대 카르타고예요. 기원전 218년 한니발은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공격했어요. 이때 쓴 코끼리는 지금은 사라진 북아프리카의 작은 코끼리였을 것으로 보여요. 그러나 아시아코끼리와 달리 아프리카사바나코끼리는 대규모로 길들여 일을 시킨 전통이 거의 없어요. 20세기 초 벨기에령 콩고에서 숲코끼리를 길들이는 시도가 있었지만 오래가지 않았어요.
근대의 상아 무역은 코끼리에게 재앙이었어요. 19세기와 20세기 초, 피아노 건반과 당구공, 빗, 장신구를 만드는 데 엄청난 양의 상아가 쓰였고, 이를 위해 수십만 마리의 코끼리가 죽었어요. 1970~80년대에는 상아 가격이 치솟으며 밀렵이 폭발적으로 늘어, 아프리카코끼리가 약 10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추정이 있어요. 이에 1989년 CITES 회의에서 상아 국제 거래가 금지됐어요.
오늘날에는 코끼리와 사람의 갈등도 심각해요. 코끼리 무리가 하룻밤 사이에 마을의 옥수수밭을 망쳐 놓거나, 물을 찾아 마을로 들어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잦아요. 생계를 잃은 농민들의 보복이 이어지기도 해요. 이를 줄이기 위해 밭 둘레에 벌통 울타리를 설치하는 방법이 케냐 등에서 효과를 보고 있어요. 코끼리가 벌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이에요. 고춧가루를 섞은 연기나 고추 울타리도 쓰여요.
한국과 코끼리의 인연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요.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11년 태종 때 일본에서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보내왔는데, 이 코끼리가 먹이를 너무 많이 먹고 사람을 밟아 죽이는 사고까지 일으켜 전라도의 섬으로 유배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어요. 이 코끼리는 아시아코끼리였을 것으로 보여요. 근대 이후에는 동물원을 통해 코끼리를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12. 보전 현황
IUCN은 2021년 처음으로 아프리카코끼리를 두 종으로 나누어 평가했어요. 사바나코끼리는 위기(EN), 숲코끼리는 위급(CR)이에요. 평가에 따르면 사바나코끼리는 약 50년 동안 최소 60% 이상, 숲코끼리는 약 30년 동안 86% 이상 줄어든 것으로 추정돼요. 2016년 무렵 발표된 아프리카 전역 항공 조사(Great Elephant Census)에서는 사바나코끼리가 약 35만 마리로 집계되었고, 두 종을 합친 아프리카코끼리 전체는 대략 40만 마리 남짓으로 추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20세기 초에는 수백만 마리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흔히 인용돼요.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에는 아시아의 상아 수요가 다시 늘면서 밀렵이 급증해, 해마다 2만 마리 이상이 죽었다는 추정도 있어요. 이후 중국이 2017년 말 국내 상아 시장을 폐쇄하고, 여러 나라가 단속을 강화하면서 아프리카 전체의 밀렵률은 조금씩 낮아지는 추세예요. 하지만 지역마다 차이가 크고, 여전히 불법 상아가 대량으로 압수되고 있어요.
주요 위협은 다음과 같아요.
- 상아를 노린 밀렵과 불법 거래
- 농지 확대와 인구 증가로 인한 서식지 감소와 이동 경로 단절
- 사람과의 갈등과 보복 살해
-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 심화
보호 활동으로는 무장 순찰대 운영, GPS 목걸이로 코끼리 이동 추적, 국경을 넘는 보전 지역 조성, 지역 주민에게 관광 수익을 나누는 공동체 보전 모델 등이 있어요. 케냐 나이로비의 고아 코끼리 보호소처럼 밀렵으로 어미를 잃은 새끼를 길러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활동도 이어지고 있어요. 한편 남부 아프리카 일부 나라는 코끼리 수가 많아 생태계와 농업에 피해가 크다며, 비축 상아 판매와 사냥 허용을 주장해 국제 사회와 의견이 엇갈리기도 해요.
아프리카코끼리는 CITES 부속서 I에 올라 있지만, 보츠와나·나미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짐바브웨의 개체군은 부속서 II로 분류돼요. 한국에서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관리되며, 상아 제품의 수입과 거래도 엄격히 제한돼요.
13. 동물원에서
코끼리는 동물원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물이지만, 동시에 사육 윤리 논쟁의 중심에 있는 동물이기도 해요. 야생에서 하루 수십 km를 걷고 수십 마리의 가족과 복잡한 관계를 맺는 동물이 좁은 공간에서 소수와 지내면, 머리를 반복해서 흔들거나 같은 자리를 오가는 정형행동, 발 질환, 관절염, 비만 같은 문제가 자주 생겨요. 여러 연구에서 사육 코끼리의 평균 수명이 야생 코끼리보다 짧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어요.
이런 문제 때문에 일부 동물원은 코끼리 전시를 중단하고 코끼리를 넓은 보호시설로 보냈어요. 다른 동물원들은 수 헥타르 규모의 방사장, 모래 바닥, 수영장, 먹이를 여러 곳에 숨기는 풍부화, 여러 마리가 함께 사는 사회적 무리 구성 등으로 환경을 개선하고 있어요. 사육사가 코끼리와 같은 공간에 들어가 막대기로 통제하던 '직접 접촉' 방식은 사고와 학대 논란 때문에,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보상으로 훈련하는 '보호 접촉'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예요.
관광지의 코끼리 타기와 코끼리 쇼도 비판을 받아요. 특히 아시아에서는 어린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가혹한 방법을 쓰는 경우가 알려지면서, 코끼리를 타지 않고 멀리서 관찰하는 방식의 보호시설이 대안으로 떠올랐어요. 다만 '보호시설'이라는 이름을 내걸고도 실제로는 체험 관광을 계속하는 곳도 있어 주의가 필요해요.
14. 대중문화 속 코끼리
코끼리는 세계 여러 문화에서 지혜, 힘, 행운의 상징이에요.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코끼리 머리를 한 지혜와 시작의 신 가네샤가 가장 사랑받는 신 가운데 하나이고, 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 부인이 흰 코끼리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석가모니를 잉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태국에서는 흰 코끼리가 왕실의 상징이었어요. 아프리카의 여러 민족에게 코끼리는 지혜로운 지도자, 또는 조상의 영혼과 연결된 존재로 이야기돼요.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우화도 유명해요. 여러 사람이 코끼리의 다른 부분을 만지고 각자 코끼리가 기둥, 뱀, 부채 같다고 우긴다는 이야기로,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꼬집어요. 한국어에서도 '군맹무상(群盲撫象)'이라는 사자성어로 쓰여요.
대중문화에서는 디즈니의 「덤보」가 큰 귀로 하늘을 나는 아기 코끼리로 사랑받았고, 프랑스 그림책 「코끼리 왕 바바」, 「정글북」의 하티 대령, 「호튼」의 코끼리 호튼도 잘 알려져 있어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그림은 어른들이 '모자'로 오해하는 장면으로 유명해요. 영어 표현 'the elephant in the room'은 모두가 알지만 말하지 않는 불편한 문제를 뜻하고, 'white elephant'는 돈만 들고 쓸모없는 물건을 가리켜요.
코끼리는 여러 나라의 국가 상징이기도 해요.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대표팀 별명은 '코끼리들'이고, 미국 공화당의 상징도 코끼리예요. 한국에서는 '코끼리 비스킷'이라는 표현이 아주 적은 양을 뜻하는 관용어로 쓰이고, 동요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라는 노랫말로 오랫동안 불렸어요.
15. 여담
- 코끼리가 쥐를 무서워한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약해요. 다만 발밑에서 갑자기 움직이는 작은 동물에 놀라는 모습이 관찰된 적은 있어요.
- 코끼리는 점프를 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포유류 중 하나예요. 네 다리 중 적어도 하나는 항상 땅에 닿아 있어요.
- 코끼리는 헤엄을 잘 쳐요. 코를 물 밖으로 내밀고 수 km를 헤엄친 기록이 있어요.
- 상아가 없이 태어나는 암컷 코끼리의 비율이 밀렵이 심했던 지역에서 크게 늘었어요.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의 연구에서는 내전 시기의 상아 밀렵이 상아 없는 암컷이 살아남도록 하는 강한 선택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 코끼리의 심장은 무게가 20kg 안팎이고, 1분에 약 30번 뛰어요. 사람의 절반 정도 빠르기예요.
- 코끼리 배설물로 종이를 만드는 사업이 스리랑카, 태국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요. 섬유질이 많아 종이 재료로 적합하다고 해요.
- 코끼리는 암을 거의 앓지 않는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 종양을 억제하는 유전자(TP53)의 사본을 여러 개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연구가 있어요.
야생동물은 반려동물이 아니에요. 포획·거래·사육은 대부분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다친 야생동물을 발견하면 지역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연락하세요.
자주 묻는 질문
아프리카코끼리와 아시아코끼리는 어떻게 달라요?
아프리카코끼리는 귀가 아프리카 대륙 모양처럼 크고, 등이 안장처럼 오목하며, 암수 모두 상아가 있어요. 코끝에는 손가락 같은 돌기가 두 개예요. 아시아코끼리는 귀가 작고 등이 둥글며, 코끝 돌기가 하나예요.
숲코끼리도 같은 종인가요?
예전에는 한 종으로 봤지만, 지금은 중앙·서아프리카 열대우림의 둥근귀코끼리(숲코끼리)를 별개의 종으로 나눠요. IUCN은 2021년에 사바나코끼리를 위기(EN), 숲코끼리를 위급(CR)으로 평가했어요.
코끼리는 정말 죽은 동료를 기억하나요?
코끼리가 죽은 코끼리의 뼈나 상아를 오래 냄새 맡고 만지는 모습이 여러 차례 관찰됐어요. 그것을 사람과 같은 '애도'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죽음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몇 안 되는 동물인 것은 분명해요.
사진 출처
사진은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의 자유 이용 허락 사진이에요. 각 사진의 작가와 라이선스는 아래와 같아요.
- 178 Male African bush elephant in Etosha National Park Photo by Giles Laurent.jpg — Giles Laurent · CC BY-SA 4.0
- 079 Herd of African bush elephants drinking in Etosha National Park Photo by Giles Laurent.jpg — Giles Laurent · CC BY-SA 4.0
- 101 African bush elephant face close-up in Etosha National Park Photo by Giles Laurent.jpg — Giles Laurent · CC BY-SA 4.0
- African Elephant (Loxodonta africana) eye close-up showing the Musth gland opening (16689303126).jpg — Bernard DUPONT from FRANCE · CC BY-SA 2.0
- African bush elephant (Loxodonta africana) baby 6 weeks.jpg — Charles J. Sharp · CC BY-SA 4.0
- African bush elephants (Loxodonta africana) female with six-week-old baby.jpg — Charles J. Sharp · CC BY-SA 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