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기린(Giraffa camelopardalis)은 지구에서 가장 키가 큰 동물이에요. 다 자란 수컷은 머리 꼭대기까지 5m를 훌쩍 넘고, 이 가운데 목 길이만 2m 가까이 돼요. 사바나에 흩어진 아카시아 나무 꼭대기의 잎을 다른 초식동물과 경쟁하지 않고 독차지할 수 있는 것이 기린만의 강점이에요. 긴 목과 다리, 그물처럼 얽힌 갈색 무늬, 머리 위의 뭉툭한 뿔 덕분에 아이들이 가장 먼저 그림으로 그리는 동물 중 하나이기도 해요.
하지만 기린의 몸은 단순히 '길쭉한' 것 이상의 놀라운 공학 작품이에요. 머리까지 피를 올려 보내기 위해 강력한 심장과 높은 혈압을 갖고 있고, 고개를 숙여 물을 마실 때 뇌에 피가 몰리지 않도록 특별한 혈관 장치가 발달했어요. 다리에는 압박 스타킹 같은 두꺼운 피부가 있어 피가 아래로 고이지 않게 막아요.
기린은 오랫동안 흔한 동물로 여겨졌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약 30년 동안 개체 수가 크게 줄면서 2016년 IUCN 적색목록에서 관심 대상(LC)에서 취약(VU)으로 두 단계나 올라갔어요. 코끼리나 코뿔소만큼 주목받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는 뜻에서 '침묵의 멸종'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했어요.
2. 이름과 분류

Steve Garvie from Dunfermline, Fife, Scotland · CC BY-SA 2.0
영어 giraffe는 아랍어 zarāfa에서 왔고,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거쳐 퍼졌어요. 학명의 종소명 camelopardalis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이 기린을 부르던 말로, '낙타(camel)'와 '표범(pard)'을 합친 거예요. 낙타처럼 키가 크고 표범처럼 무늬가 있다는 뜻이에요. 실제로 옛날 유럽 사람들은 기린을 낙타와 표범의 잡종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밤하늘의 별자리 기린자리(Camelopardalis)도 여기서 이름을 땄어요.
한국어 '기린(麒麟)'은 원래 동아시아 전설 속의 상서로운 동물 이름이에요. 15세기 초 명나라의 정화 함대가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항해했을 때, 말린디(지금의 케냐) 등에서 바친 기린이 중국 황제에게 전해졌어요. 중국 사람들은 이 신기한 동물을 전설 속 기린이 나타난 것으로 여겨 '기린'이라고 불렀고, 이 이름이 한국과 일본에도 그대로 쓰이게 되었어요. 그래서 전설의 기린과 실제 동물 기린이 같은 이름을 공유하게 되었지요. 다만 중국에서는 지금 실제 동물을 주로 '장경록(長頸鹿, 목이 긴 사슴)'이라고 불러요.
2.1. 종인가 아종인가
기린의 분류는 지금도 활발히 논의되는 주제예요. 전통적으로는 1종 9아종으로 나누었지만, 2016년 무렵부터 발표된 유전자 연구에서 기린을 4종으로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어요. 2021년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이어졌어요. 다만 IUCN은 아직 1종으로 평가하고 있고, 학자마다 견해가 달라요.
| 제안된 종 | 포함되는 아종(전통적 구분) | 주요 분포 |
|---|---|---|
| 북부기린 (G. camelopardalis) | 누비아기린·코르도판기린·서아프리카기린 | 서·중앙·동북 아프리카 |
| 그물무늬기린 (G. reticulata) | 그물무늬기린 | 케냐 북부·소말리아·에티오피아 남부 |
| 마사이기린 (G. tippelskirchi) | 마사이기린·톤니크로프트기린 | 케냐 남부·탄자니아·잠비아 |
| 남부기린 (G. giraffa) | 앙골라기린·남아프리카기린 | 남부 아프리카 |
지역마다 무늬가 뚜렷하게 달라요. 그물무늬기린은 흰 선이 가늘고 또렷한 그물 모양이고, 마사이기린은 별이나 단풍잎처럼 들쭉날쭉한 반점이 특징이며, 남아프리카기린은 반점이 둥글고 색이 옅은 편이에요.
기린의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은 콩고민주공화국 열대우림에 사는 오카피예요. 오카피는 목이 그리 길지 않고 다리에 얼룩말 같은 줄무늬가 있어 얼핏 말처럼 보이지만, 기린과 함께 기린과(Giraffidae)를 이루는 유일한 동물이에요.
3. 진화
기린과의 조상은 약 2,000만 년 전 무렵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에 나타난 것으로 보여요. 초기의 기린과 동물들은 목이 길지 않았고, 오히려 오카피나 사슴에 가까운 모습이었어요. 유라시아에 살던 시바테리움(Sivatherium)은 목이 짧고 덩치가 큰 소 같은 모습에 머리에 넓적한 뿔이 있었고, 약 1만 년 전 무렵까지 살아남았다는 주장도 있어요.
목이 긴 기린 계통은 약 700만~800만 년 전 무렵 나타났어요. 이 시기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의 숲이 줄고 사바나가 넓어지면서, 높은 곳의 잎을 먹을 수 있는 키 큰 동물이 유리해졌다는 설명이 일반적이에요. 현생 기린속(Giraffa)의 화석은 약 100만~200만 년 전 무렵부터 동아프리카에서 나와요.
기린의 목이 왜 길어졌는지는 진화론의 오랜 단골 사례예요. 19세기 초 라마르크는 기린이 높은 잎을 먹으려고 목을 늘이다 보니 그 결과가 자손에게 전해졌다고 설명했지만, 이후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원래 목이 조금 더 긴 개체가 먹이 경쟁에서 살아남아 자손을 더 많이 남겼다고 설명했어요. 최근에는 먹이 경쟁 외에도 수컷끼리 목을 휘둘러 싸우는 '네킹'에서 목이 길고 무거운 수컷이 유리했다는 '성 선택' 가설, 몸이 커지면서 열을 식히기 좋았다는 가설 등이 함께 논의돼요. 중국에서 발견된 약 1,700만 년 전의 기린과 화석 디스코케릭스(Discokeryx)는 머리뼈가 두껍고 목뼈 관절이 튼튼해 머리 박치기 싸움을 했던 것으로 보여, 기린과 동물에게 싸움이 목과 머리 진화에 중요했다는 가설을 뒷받침해요.
4. 분포와 서식지

Bjørn Christian Tørrissen · CC BY-SA 3.0
기린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의 20여 개 나라에 살아요. 가장 많은 수가 사는 곳은 동아프리카(케냐·탄자니아)와 남부 아프리카(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보츠와나·짐바브웨·잠비아)예요. 서아프리카에서는 니제르에 작은 무리가 남아 있고, 중앙아프리카와 동북아프리카의 차드, 우간다, 남수단, 에티오피아 등에도 흩어져 있어요.
기린이 좋아하는 환경은 아카시아와 콤미포라 같은 나무가 드문드문 자라는 사바나와 개방된 건조림이에요. 먹이가 되는 나무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포식자를 멀리서 발견할 수 있도록 시야가 트여 있어야 해요. 그래서 짙은 숲이나 나무가 전혀 없는 초원에는 잘 살지 않아요. 기린은 물을 며칠씩 마시지 않아도 견딜 수 있어 반건조 지대에도 살아요. 나뭇잎에 든 수분과 이슬로 필요한 물의 상당 부분을 얻기 때문이에요.
과거에는 기린이 사하라 남쪽 대부분과 북아프리카 일부에도 살았어요. 사하라 사막의 바위 그림에는 기린이 자주 등장하는데, 사하라가 지금보다 푸르렀던 시기의 흔적이에요. 오늘날 기린은 세네갈, 나이지리아, 말리 등 서아프리카 여러 나라와 에리트레아, 기니 등에서 사라졌어요.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사유지 보호구역에 기린을 다시 들여오면서 원래 살지 않던 지역에까지 기린이 퍼진 경우도 있어요.
5. 신체 특징
기린의 몸은 앞쪽이 높고 뒤쪽이 낮게 기울어진 모양이에요.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약간 길고, 어깨에서 엉덩이로 갈수록 등이 낮아져요.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크고 무거워요.
| 구분 | 수컷 | 암컷 |
|---|---|---|
| 키(머리 꼭대기까지) | 약 4.5~5.8m | 약 3.9~4.5m |
| 어깨높이 | 약 3~3.5m | 약 2.7~3m |
| 몸무게 | 약 800~1,900kg | 약 550~1,200kg |
| 목 길이 | 약 1.5~2m | 수컷보다 약간 짧음 |
| 다리 길이 | 약 1.8m 이상 |
가장 큰 기록은 키 약 5.9m의 수컷으로 알려져 있어요. 갓 태어난 새끼조차 키가 1.5~2m 가까이 되어, 웬만한 어른 사람보다 커요.
5.1. 목과 순환계
놀랍게도 기린의 목뼈는 사람이나 쥐와 같은 7개예요. 대신 목뼈 하나의 길이가 25cm 이상으로 매우 길어요. 첫 번째 가슴뼈도 목뼈처럼 움직일 수 있어 목의 유연성을 더해 준다는 연구가 있어요. 목을 지탱하는 굵은 인대(목덜미 인대)가 머리 무게를 받쳐 주기 때문에 근육의 부담이 줄어요.
머리가 심장보다 2m 가까이 높이 있기 때문에, 피를 뇌까지 보내려면 강한 압력이 필요해요. 기린의 심장은 무게가 약 11kg 안팎이고 벽이 매우 두꺼우며, 혈압은 사람의 2~3배에 이르러 포유류 중 가장 높은 편이에요. 고개를 숙여 물을 마실 때는 갑자기 머리로 피가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목의 정맥에 있는 판막과 뇌 아래쪽의 촘촘한 혈관망(경동맥망)이 압력을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다리에서는 반대의 문제가 생겨요. 높은 혈압 때문에 다리에 피와 체액이 고여 붓기 쉬운데, 기린의 다리 피부는 두껍고 팽팽해서 압박 스타킹처럼 이를 막아 줘요. 이 원리는 우주비행사의 중력 적응 연구나 의료용 압박 스타킹 연구에서 참고 대상이 되기도 했어요.
5.2. 뿔·혀·털
기린의 머리 위 뿔은 '오시콘(ossicone)'이라고 불러요. 사슴뿔처럼 해마다 빠졌다 나는 것이 아니고, 소의 뿔처럼 각질로 덮인 것도 아니라, 연골이 굳어 뼈가 되고 피부와 털로 덮인 독특한 구조예요. 암수 모두 있지만 암컷은 끝에 털뭉치가 남아 있고, 수컷은 싸움 때문에 털이 닳아 끝이 반들반들하고 굵어요. 나이 든 수컷은 이마 가운데에도 혹 같은 뼈가 자라고 머리뼈 전체가 두꺼워져, 머리 무게가 계속 늘어나요.
혀는 길이 45~50cm에 이르고, 물건을 감싸 쥘 수 있어요. 혀는 끝부분이 검푸른 색인데, 하루 종일 햇빛 아래에서 먹이를 먹을 때 혀가 햇볕에 타는 것을 막아 준다는 설명이 흔하지만 확실히 증명되지는 않았어요. 입술과 혀는 두껍고 단단하며 침이 끈적해서, 아카시아의 날카로운 가시 사이로도 잎을 훑어 먹을 수 있어요.
털의 반점 무늬는 개체마다 달라서 사람의 지문처럼 평생 변하지 않아요. 연구자들은 사진으로 반점 무늬를 비교해 개체를 구별해요. 반점의 크기와 모양은 어미에게서 물려받는 경향이 있고, 반점이 크고 둥근 새끼일수록 생존율이 높다는 연구도 있어요. 반점 아래에는 복잡한 혈관이 지나가 열을 내보내는 '창문' 역할을 한다는 설명도 있어요.
6. 생태와 습성

Hans Hillewaert · CC BY-SA 4.0
기린은 하루의 상당 시간, 많게는 16~20시간 가까이를 먹고 걷고 되새김질하며 보내요. 잠은 매우 적게 자요. 야생 기린은 대부분 선 채로 짧게 졸고, 깊은 잠을 잘 때는 앉아서 목을 뒤로 굽혀 머리를 엉덩이나 뒷다리에 기대요. 이런 깊은 잠은 한 번에 몇 분 정도이고, 하루를 다 합쳐도 몇 시간에 못 미친다고 알려져 있어요. 누워 있다가 일어서는 데 시간이 걸려 포식자에게 취약하기 때문이에요.
기린의 사회는 '분열-융합(fission-fusion)' 구조예요. 무리 구성원이 몇 시간이나 며칠마다 바뀌고, 큰 무리가 작게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지기를 반복해요. 예전에는 기린의 사회관계가 느슨하다고 여겼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암컷들이 특정 상대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함께 새끼를 돌보는 등 생각보다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수컷끼리는 짝짓기 상대를 두고 '네킹(necking)'이라는 독특한 싸움을 벌여요. 두 수컷이 나란히 서서 긴 목을 휘둘러 상대의 몸에 머리를 내리치는 방식이에요. 대부분은 힘을 겨루는 수준에서 끝나지만, 격렬한 싸움에서는 상대를 기절시키거나 크게 다치게 하기도 해요. 기린은 걸을 때 같은 쪽 앞다리와 뒷다리를 함께 움직이는 '측대보'로 걷고, 달릴 때는 시속 50~60km까지 낼 수 있어요.
7. 먹이
기린은 주로 나뭇잎을 먹는 '브라우저(browser)'예요. 가장 즐겨 먹는 것은 아카시아 종류의 잎과 새순이고, 그 밖에도 콤미포라, 테르미날리아 등 수십 종의 나무와 덤불의 잎, 꽃, 열매를 먹어요. 다 자란 기린은 하루에 약 30~35kg의 먹이를 먹어요. 소처럼 위가 네 칸으로 나뉜 반추동물이라, 먹은 것을 다시 입으로 올려 되새김질해요. 걸어가면서 목을 따라 먹이 덩어리가 오르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아카시아는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아요. 날카로운 가시를 내고, 잎에 쓴맛을 내는 타닌을 늘리며, 일부 아카시아는 가시 속에 사는 개미와 공생해 기린이 다가오면 개미들이 공격하게 해요. 기린은 이에 맞서 단단한 입술과 긴 혀로 가시를 피해 잎을 훑고, 한 나무에서 오래 먹지 않고 옮겨 다니며 타닌이 늘기 전에 다른 나무로 가요. 또 기린이 잎을 뜯으면 아카시아가 공기 중으로 화학 신호를 내보내 주변 나무들도 타닌을 늘린다는 연구도 알려져 있어 흥미로워요.
수컷과 암컷은 먹는 높이가 조금 달라요. 수컷은 목을 쭉 뻗어 높은 가지를 먹는 경우가 많고, 암컷은 몸 높이 정도에서 고개를 숙이고 먹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차이도 목 길이 진화를 둘러싼 논의에 쓰여요.
기린은 칼슘과 인 같은 미네랄을 보충하기 위해 뼈를 씹는 행동을 보이기도 해요. 이를 '골식'이라고 부르며, 죽은 동물의 뼈를 입에 물고 오랫동안 우물거리는 모습이 관찰돼요. 물은 며칠에 한 번 마시는데, 이때 앞다리를 넓게 벌리거나 무릎을 굽혀 머리를 낮춰야 해서 포식자에게 가장 취약한 순간이 돼요.
8. 번식과 일생

Hans Hillewaert · CC BY-SA 3.0
기린은 계절에 관계없이 번식할 수 있지만, 우기에 짝짓기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요. 수컷은 암컷의 오줌 맛을 보고 발정 여부를 확인하는데, 암컷이 오줌을 누면 그 오줌을 입으로 받아 맛을 본 뒤 플레멘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 관찰돼요. 서열이 높은 수컷이 대부분의 짝짓기를 차지해요.
임신 기간은 약 15개월(450~460일)로 매우 길어요. 암컷은 선 채로 새끼를 낳기 때문에, 새끼는 약 1.5~2m 높이에서 땅으로 떨어지며 세상에 나와요. 이 충격이 새끼의 첫 호흡을 돕는다고 설명하기도 해요. 갓 태어난 새끼는 키 약 1.7~2m, 몸무게 약 50~70kg이고, 태어난 지 1시간 안에 일어서서 걸을 수 있어요. 기린은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새끼를 낳는 경향이 있어, 이런 장소를 '출산지'라고 불러요.
| 단계 | 나이 | 특징 |
|---|---|---|
| 신생아 | 0~1주 | 어미가 덤불 근처에 숨겨 두고 자주 찾아옴 |
| 보육 무리 | 1주~몇 개월 | 여러 새끼가 모여 '탁아소'를 이루고 어미들이 교대로 지킴 |
| 젖떼기 | 약 12~16개월 | 나뭇잎을 먹으며 점차 독립 |
| 독립 | 1.5~2살 | 어린 수컷은 수컷 무리로, 암컷은 어미 근처에 머무는 경우가 많음 |
| 번식 시작 | 암컷 4~5살, 수컷 7살 전후 | 수컷은 서열 경쟁에서 이겨야 짝짓기 기회가 늘어남 |
새끼 기린의 첫해는 위험해요. 사자, 하이에나, 표범, 들개에게 많이 희생되어, 지역에 따라 첫해 생존율이 50% 안팎에 그치기도 해요. 야생 기린의 수명은 보통 20~25년이고, 동물원에서는 25년을 넘기는 경우도 있어요.
9. 지능·의사소통·특별한 능력
기린은 오랫동안 '소리를 내지 않는 동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콧김을 뿜거나 으르렁거리고, 새끼를 부르는 소리를 내요. 놀랐을 때는 강하게 콧바람을 불어 무리에게 위험을 알려요. 2015년 무렵에는 유럽 동물원 기린들이 밤에 낮은 주파수로 웅웅거리는 소리를 낸다는 녹음 연구가 발표되어 관심을 끌었는데, 이 소리의 의미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기린의 가장 강력한 감각은 시각이에요. 높은 곳에 달린 큰 눈 덕분에 수 km 밖의 포식자도 알아볼 수 있고, 시야가 넓어요. 다른 초식동물들, 예를 들어 얼룩말이나 영양은 기린이 경계하는 방향을 보고 위험을 알아채기도 해요. 그래서 사바나에서 기린은 일종의 '망루' 역할을 한다고도 해요.
기린은 서로를 바라보거나 귀와 목의 자세로 의사를 전달하고, 냄새로도 소통하는 것으로 보여요. 기린 털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는 진드기 같은 기생충을 쫓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연구가 있고, 수컷은 이 냄새가 더 강해 암컷을 유혹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가설이 있어요. 기린의 인지 능력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지만, 사육 기린 실험에서 먹이의 양을 비교해 더 많은 쪽을 고르는 등 간단한 확률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어요.
10. 천적과 생존
다 자란 기린은 덩치가 크고 발차기가 강력해 천적이 많지 않아요. 기린의 발차기는 사자의 머리뼈를 부수거나 척추를 부러뜨릴 만큼 강하다고 알려져 있고, 앞발과 뒷발 모두로 차요. 그래서 사자도 다 자란 기린을 사냥할 때는 큰 무리로, 주로 기린이 물을 마시거나 앉아 있는 틈을 노려요. 탄자니아 세렝게티나 남아프리카 크루거 국립공원 같은 곳에서는 사자 무리가 다 자란 기린을 꽤 자주 잡는다는 기록이 있어요.
새끼 기린은 훨씬 취약해요. 사자뿐 아니라 점박이하이에나, 표범, 아프리카들개, 악어에게도 희생돼요. 어미 기린은 새끼를 지키기 위해 포식자 앞을 막아서고 강하게 발길질을 하며 맞서요.
기린이 위험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발견하는 거예요. 높은 시야로 포식자를 일찍 발견하면 달아나거나 무리를 경계 태세로 바꿀 수 있어요. 질병으로는 피부에 회색 딱지가 생기는 '기린 피부병'이 여러 지역에서 보고되고 있는데, 원인과 영향이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어요. 일부 지역에서는 전력선 감전이나 차량 충돌로 죽는 기린도 늘고 있어요.
11. 인간과의 관계
기린과 사람의 인연은 아주 오래됐어요. 사하라와 남부 아프리카의 바위 그림에는 수천 년 전 사람들이 그린 기린이 많이 남아 있어요. 니제르의 도부르에는 실물 크기에 가까운 기린 두 마리를 새긴 바위 조각이 있는데, 약 7,000~9,000년 전 작품으로 추정돼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누비아에서 기린을 공물로 받았고, 기린 모양의 상형 문자도 있었어요.
유럽에는 고대 로마 시대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린을 처음 들여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해져요. 이후 오랫동안 유럽에서 기린은 보기 힘든 동물이었어요. 1486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로렌초 데 메디치가 기린을 선물로 받은 일이 유명하고, 1827년 이집트의 통치자가 프랑스 왕 샤를 10세에게 선물한 기린 '자라파'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기린 무늬 옷과 장신구가 크게 유행했어요. 앞에서 말했듯 15세기에는 중국 명나라에도 기린이 전해졌어요.
아프리카 현지에서 기린은 고기, 가죽, 힘줄을 얻기 위해 사냥되었어요. 기린 가죽은 방패나 북, 힘줄은 활시위나 악기 줄로 쓰였어요. 일부 지역에서는 기린 꼬리털이 장신구나 신부 지참금의 일부로 귀하게 여겨졌어요. 오늘날에는 밀렵과 야생동물 고기 사냥이 일부 지역 기린 감소의 원인이 되고 있고, 반대로 기린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지역 경제를 돕기도 해요.
한국에는 기린이 산 적이 없어요.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기린'은 성인이 나타날 때 함께 나타난다는 전설 속의 상서로운 동물이었고, 실제 기린은 근대 이후 동물원을 통해 알려졌어요.
12. 보전 현황
IUCN은 2016년 기린을 취약(VU) 등급으로 평가했어요. 1985년 무렵 약 15만~16만 마리였던 기린이 2015년 무렵 약 9만 7천 마리 수준으로 줄어, 30년 동안 약 36~40%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에요. 이후 일부 지역의 보호 성과와 조사 개선으로, 기린 보전 재단(GCF) 등은 2020년대 초 전체 기린이 약 11만 7천 마리 안팎이라고 발표했어요. 아종별로는 상황이 크게 달라서, 코르도판기린과 누비아기린은 위급(CR), 그물무늬기린과 마사이기린은 위기(EN)로 평가된 반면, 남아프리카기린과 앙골라기린은 비교적 안정적이에요.
주요 위협 요인은 다음과 같아요.
- 서식지 감소와 단절: 농지와 정착지가 넓어지고 나무가 땔감과 숯으로 베여요.
- 밀렵과 야생동물 고기 사냥: 특히 내전과 불안정이 이어지는 지역에서 심해요.
- 내전과 정치 불안: 남수단, 소말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일부 지역에서는 기린이 거의 사라졌어요.
- 가뭄과 기후 변화, 가축과의 먹이 경쟁
성공 사례도 있어요. 서아프리카 니제르의 기린은 1990년대 중반 50마리 정도까지 줄었지만, 정부와 주민, 보호 단체가 힘을 모아 지키면서 2020년대에는 600마리 이상으로 늘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 기린들은 사람이 사는 농촌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유명해요. 우간다에서는 누비아기린을 여러 보호구역으로 옮겨 새로운 무리를 만드는 사업이 성과를 냈고, 케냐에서는 지역 공동체가 운영하는 보호구역이 그물무늬기린을 지키고 있어요.
국제적으로 기린은 2019년 CITES 부속서 II에 처음 올라, 기린 뼈와 가죽, 고기 등의 국제 거래를 관리하게 되었어요. 한국에서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관리돼요. 매년 6월 21일은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에 맞춘 '세계 기린의 날'이에요.
13. 동물원에서
기린은 동물원에서 비교적 잘 적응하고 번식도 잘 되는 편이에요. 하지만 큰 키 때문에 높은 천장의 실내 시설이 필요하고, 추운 지역의 동물원에서는 겨울 내내 따뜻한 실내에서 지내야 해요. 바닥이 너무 딱딱하거나 미끄러우면 발굽과 관절에 문제가 생기기 쉬워, 모래나 고무 바닥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사육 기린이 자주 보이는 문제 중 하나는 혀로 벽이나 울타리를 계속 핥는 정형행동이에요. 야생에서는 하루 대부분을 나뭇잎을 찾아 먹는 데 쓰는데, 사육 상태에서는 사료를 빨리 먹고 나면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뭇가지를 매달아 주거나 먹이를 높은 곳의 구멍 뚫린 통에 넣어 오래 꺼내 먹게 하는 풍부화가 쓰여요.
관람객이 기린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은 인기가 많지만, 먹이의 종류와 양이 관리되지 않으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요. 2014년 유럽의 한 동물원에서 유전적으로 중복된 건강한 어린 기린을 안락사시키고 공개 해부한 사건은 동물원 개체군 관리 방식에 대한 세계적인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어요.
14. 대중문화 속 기린
동아시아에서 '기린'이라는 이름은 전설의 동물과 함께 오랜 상징성을 지녀요. 전설의 기린은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 말의 발굽을 하고 이마에 뿔이 하나 있는 상서로운 동물로, 어진 임금이나 성인이 나타날 때 모습을 드러낸다고 여겨졌어요. 그래서 재주가 뛰어난 아이를 '기린아(麒麟兒)'라고 불러요. 일본의 맥주 브랜드 기린과 그 로고도 이 전설의 기린에서 따온 거예요. 조선 시대에는 기린 문양이 왕실과 고위 관리의 흉배(관복의 가슴 장식)에 쓰이기도 했어요.
실제 동물 기린도 대중문화에서 사랑받는 캐릭터예요. 미국 장난감 가게 체인 토이저러스의 마스코트 기린 제프리,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의 겁 많은 기린 멜먼이 유명하고, 프랑스의 아기 치아 장난감 '소피 기린'은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아기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는 불타는 기린이 등장해요.
2017년에는 미국 뉴욕주의 한 동물원에서 임신한 기린 '에이프릴'의 출산 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는데, 수백만 명이 지켜봐 화제가 되었어요. 한국에서는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는 말과 함께 기린이 기다림의 상징처럼 쓰이기도 하고, 키가 큰 사람에게 '기린'이라는 별명이 붙는 경우가 많아요. 탄자니아는 기린을 국가 동물로 지정하고 있어요.
15. 여담
- 기린의 발굽은 지름이 약 30cm로, 접시만큼 커요.
- 기린은 하품을 하거나 기침을 할 수 있지만, 거의 하지 않아 관찰하기 어렵다고 해요.
- 기린의 속눈썹은 길고 짙어서 먼지와 가시로부터 눈을 보호해요.
- 기린은 혀로 자기 귀와 콧구멍을 청소할 수 있어요.
- 기린의 영어 무리 이름 중 하나는 '타워(tower)'예요. 함께 서 있는 모습이 탑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걸어가는 무리는 '저니(journey)'라고 부르기도 해요.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기린이 번개에 맞아 죽은 사례가 보고된 적이 있어요. 사바나에서 가장 키가 큰 기린에게 벼락은 실제 위험 요인이에요.
- 2020년에는 우간다와 나미비아에서 다리가 짧은 골격 왜소증 기린 두 마리가 보고되었어요. 야생 기린의 왜소증이 기록된 첫 사례로 알려져 있어요.
- 새끼 기린은 어른 기린보다 훨씬 오래 자요.
야생동물은 반려동물이 아니에요. 포획·거래·사육은 대부분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다친 야생동물을 발견하면 지역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연락하세요.
자주 묻는 질문
기린은 소리를 내나요?
거의 조용하지만 완전히 말이 없는 동물은 아니에요. 콧김, 앓는 듯한 소리, 새끼를 부르는 소리를 내고, 밤에 사람 귀에 잘 안 들리는 낮은 웅웅거림을 낸다는 녹음 연구도 있어요.
기린은 몇 종인가요?
전통적으로 1종 9아종으로 봤지만, 유전자 연구에서 4종(북부기린·그물무늬기린·마사이기린·남부기린)으로 나누자는 주장이 나왔어요. 아직 학계와 IUCN이 공식적으로 정리하지 않아 자료마다 달라요.
기린은 왜 위험해졌나요?
1980년대 말 이후 약 30년 동안 개체 수가 30~40% 줄어든 것으로 추정돼요. 서식지가 농지로 바뀌고, 내전 지역에서 고기를 위해 밀렵되며, 서식지가 조각나는 것이 주된 원인이에요.
사진 출처
사진은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의 자유 이용 허락 사진이에요. 각 사진의 작가와 라이선스는 아래와 같아요.
- Angolan giraffe (Giraffa camelopardalis angolensis) female with young 2 months.jpg — Charles J. Sharp · CC BY-SA 4.0
- Flickr - Rainbirder - Reticulated Giraffe drinking.jpg — Steve Garvie from Dunfermline, Fife, Scotland · CC BY-SA 2.0
- GiraffaCamelopardalisTippelskirchi-Masaai-Mara.JPG — Bjørn Christian Tørrissen · CC BY-SA 3.0
- Giraffa camelopardalis angolensis, flip.jpg — Hans Hillewaert · CC BY-SA 4.0
- Giraffa camelopardalis angolensis (mating).jpg — Hans Hillewaert · CC BY-SA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