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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고래 Orcinus orca

검은 몸에 선명한 흰 무늬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큰 돌고래이자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예요. 할머니가 이끄는 모계 가족과 집단마다 다른 방언·사냥 문화로 유명해요.

수컷의 등지느러미는 최대 약 1.8m아들딸 모두 평생 어미 곁에 머무는 모계 가족폐경 후에도 수십 년을 사는 할머니가 무리를 이끎가족마다 다른 울음 ‘방언’을 가짐파도 만들기, 해변 돌진 등 집단별 사냥 문화

1. 개요

검은 바탕에 선명한 흰 무늬,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칼 같은 등지느러미. 범고래는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모습을 가진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예요. 이름에 ‘고래’가 붙어 있지만 분류학적으로는 참돌고래과에 속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돌고래예요.

범고래는 북극과 남극의 얼음 바다부터 열대 바다까지 지구 거의 모든 대양에 살아요. 사람을 빼면 가장 넓게 퍼져 사는 포유류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예요. 그런데 같은 범고래라도 사는 곳에 따라 먹는 것과 사냥법, 소리, 생김새가 크게 달라요. 어떤 집단은 연어만 먹고, 어떤 집단은 물범과 다른 고래만 사냥하며, 또 어떤 집단은 상어를 주로 노려요. 서로 섞이지도 않아서, 범고래를 여러 종으로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어요.

범고래 사회의 중심은 할머니예요. 어미와 자식들이 평생 함께 지내는 모계 가족을 이루고, 번식을 마친 나이 든 암컷이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을 이끌어요. 사람처럼 폐경 이후에도 수십 년을 사는 몇 안 되는 동물이라는 점에서도 큰 관심을 받아요.

영어권에서는 오랫동안 ‘킬러 웨일(killer whale)’이라는 무서운 이름으로 불렸지만, 야생 범고래가 사람을 공격해 죽인 확실한 기록은 없어요. 반면 수족관에서의 사육 문제는 범고래를 둘러싼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어요.

2. 이름과 분류

범고래
Rebecca Wellard, Project ORCA, (www.projectorca.com.au). · CC BY-SA 4.0

학명은 Orcinus orca예요. 속명 Orcinus는 로마 신화의 저승 신 오르쿠스(Orcus)와 관련되어 ‘저승에 속한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하고, 고래 종류를 가리키던 라틴어 orca에서 왔다고 보기도 해요. 어느 쪽이든 오래전부터 두려운 바다 동물이라는 인상이 이름에 담겨 있어요.

영어 이름 킬러 웨일은 원래 스페인 뱃사람들이 ‘고래를 죽이는 것(asesina de ballenas)’이라고 부른 데서 왔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 말이 번역되며 순서가 뒤바뀌어 ‘살인 고래’처럼 되었다는 설명이에요. 요즘은 부정적인 느낌을 피하려고 ‘오르카’라는 이름을 더 많이 써요.

한국어 이름 범고래는 ‘호랑이(범) 같은 고래’라는 뜻이에요. 강력한 포식자라는 점,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가 뚜렷한 무늬가 호랑이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붙은 이름으로 여겨져요. 일본어로는 ‘샤치’라고 하며, 성의 지붕 장식으로 쓰이는 상상의 물고기 ‘샤치호코’와 이름을 나눠 쓰고 있어요.

범고래는 범고래속의 유일한 현생종이에요. 이름이 비슷한 ‘흑범고래(false killer whale)’나 ‘들쇠고래(파일럿고래)’는 같은 참돌고래과지만 다른 속에 속해요.

2.1. 생태형: 한 종인가, 여러 종인가

범고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생태형’이에요. 같은 바다에 살면서도 먹이와 행동, 유전자가 뚜렷이 다른 집단을 말해요. 북태평양 동부에서는 다음 세 가지가 잘 알려져 있어요.

생태형주요 먹이특징
정주형(레지던트)연어 등 물고기큰 가족 무리, 시끄럽고 수다스러움, 등지느러미 끝이 둥근 편
비그형(이동형, 트랜지언트)물범, 바다사자, 돌고래, 고래작은 무리, 사냥 중에는 조용함, 등지느러미가 뾰족한 편
외해형(오프쇼어)상어 등 어류먼바다에서 큰 무리, 상어 피부 때문에 이빨이 닳아 있음

남극에서는 A형, 큰 B형, 작은 B형, C형, D형 같은 여러 유형이 보고되었어요. 몸 크기, 눈 위 흰 무늬의 크기와 모양, 몸 색이 서로 달라요. 예를 들어 C형은 몸이 작고 남극이빨고기 같은 물고기를 먹으며, D형은 눈 위 무늬가 아주 작고 머리가 둥글어요.

2024년에는 북태평양 동부의 정주형과 비그형을 각각 독립된 종으로 나누자는 연구가 발표되었어요. 아직 국제적으로 확정된 분류는 아니지만, 앞으로 범고래가 한 종이 아니라 여러 종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학자가 많아요.

3. 진화

범고래는 참돌고래과 안에서 비교적 일찍 갈라져 나온 계통으로 여겨져요.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이 누구인지는 연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라와디돌고래나 흑범고래, 들쇠고래 등 머리가 둥근 돌고래 무리와 가깝다는 결과가 많아요.

화석 기록으로는 이탈리아의 약 300만~500만 년 전 지층에서 나온 Orcinus citoniensis라는 멸종 종이 있어요. 지금의 범고래보다 작고 이빨 수가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주로 물고기를 먹었을 것으로 추정돼요. 이 밖에 아르헨티나와 영국 등에서도 범고래 무리의 화석이 보고되었어요.

오늘날의 생태형들이 언제 갈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활발해요.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범고래 생태형 사이의 분화는 수십만 년 안쪽의 비교적 최근 일로 보이는데, 짧은 시간에 이렇게 다른 집단이 생긴 이유로 ‘문화’가 꼽혀요. 먹이 전문화와 사냥 기술이 가족 안에서 대를 이어 전해지면서, 다른 문화를 가진 집단끼리는 짝을 맺지 않게 되고, 결국 유전적으로도 멀어졌다는 거예요. 문화가 진화를 이끈 사례로 자주 소개돼요.

4. 분포와 서식지

범고래
Oregon State University · CC BY-SA 2.0

범고래는 전 세계 모든 대양과 대부분의 부속 바다에 살아요. 다만 고르게 퍼져 있지는 않고, 먹이가 풍부한 차가운 바다와 연안에 밀도가 높아요. 북태평양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와 미국 워싱턴주, 알래스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남극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근해, 뉴질랜드 등이 대표적인 서식지예요.

일부 집단은 계절에 따라 먹이를 따라 이동해요. 북태평양 정주형은 여름과 가을에 연어가 강으로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해안 가까이 모이고, 노르웨이 범고래는 청어 떼를 따라 피오르와 외해를 오가요. 남극의 일부 범고래는 짧은 기간 동안 아열대 바다까지 수천 km를 이동했다가 돌아오는 모습이 관찰되었는데, 차가운 물에서 손상된 피부를 따뜻한 물에서 회복하기 위한 이동이라는 가설이 있어요.

한국 주변에서는 동해에서 범고래 무리가 가끔 관찰돼요. 과거 포경 기록에도 등장하고, 최근에도 동해안 앞바다에서 무리가 목격되거나 그물에 걸린 사례가 보도된 적이 있어요. 다만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집단이 있는지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5. 신체 특징

범고래는 돌고래 가운데 가장 크고, 암수의 몸집 차이가 뚜렷해요.

항목수컷암컷
몸길이약 6~8m, 드물게 9m 이상약 5~7m
몸무게약 3.5~6톤, 큰 개체는 그 이상약 1.5~4톤
등지느러미 높이최대 약 1.8m, 곧게 솟은 삼각형약 0.9m 안팎, 낫 모양
이빨위아래 좌우 10~13개씩, 길이 최대 약 10cm같음
최고 속도짧게 시속 45km 이상같음

몸 색은 등과 옆구리가 검고, 눈 뒤쪽의 타원형 흰 반점, 아래턱과 배의 흰 부분, 등지느러미 뒤쪽의 회색 ‘안장 무늬’가 있어요. 이 무늬들은 개체마다 모양이 조금씩 달라서, 등지느러미의 흠집과 함께 개체를 구별하는 데 쓰여요. 갓 태어난 새끼는 흰 부분이 노랗거나 주황빛을 띠다가 1년쯤 지나면 하얗게 변해요.

수컷의 등지느러미는 사춘기 무렵부터 갑자기 높이 자라기 시작해요. 그래서 바다 위로 솟은 등지느러미의 모양만 보고도 다 자란 수컷인지, 암컷이나 어린 개체인지 알 수 있어요. 가슴지느러미는 둥근 노 모양으로 매우 크고, 수컷은 몸길이의 5분의 1에 이르기도 해요.

5.1. 감각

범고래는 다른 이빨고래처럼 반향정위를 써요. 클릭음을 내고 메아리를 들어 먹이와 지형을 파악해요. 다만 물범이나 돌고래를 사냥하는 비그형은 먹잇감도 소리를 잘 듣기 때문에, 사냥할 때는 반향정위나 울음을 아주 아끼고 조용히 움직여요. 연어를 먹는 정주형은 연어가 고래의 클릭음을 잘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껏 소리를 내요. 시력도 물속과 물 밖 모두 좋은 편이라, 머리를 물 밖으로 들어 주변을 살피는 ‘스파이 호핑’을 자주 해요.

6. 생태와 습성

범고래
Callan Carpenter · CC BY 4.0

범고래 사회는 생태형에 따라 구조가 달라요. 가장 잘 연구된 북태평양 정주형의 경우, 사회의 기본 단위는 ‘모계 단위’예요. 할머니 한 마리와 그 자식들, 딸이 낳은 손주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요. 놀라운 점은 아들도 딸도 평생 어미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수컷은 번식할 때만 잠시 다른 무리의 암컷과 만나고 다시 어미에게 돌아와요.

여러 모계 단위가 모여 ‘포드’를 이루고, 같은 방언을 공유하는 포드들이 ‘씨족’을, 서로 어울리는 씨족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겹겹의 구조예요. 반면 비그형은 무리가 더 작고, 자식 일부가 자라면 독립하는 경우가 있어요. 작은 무리가 물범 같은 작은 먹이를 사냥하기에 더 효율적이기 때문으로 보여요.

범고래는 하루의 대부분을 이동하고 먹이를 찾는 데 쓰고, 나머지 시간에는 가족이 나란히 붙어 천천히 헤엄치며 쉬거나 놀아요. 꼬리로 수면을 치는 ‘테일 슬랩’, 몸 전체를 물 밖으로 솟구치는 ‘브리칭’, 해초를 걸치고 노는 행동이 자주 관찰돼요. 북태평양 남부 정주형은 서로 만났을 때 일렬로 늘어서 마주 보는 ‘인사 의식’ 같은 행동을 보이기도 해요.

6.1. 할머니 효과와 폐경

범고래 암컷은 대개 30대 후반에서 40대에 번식을 멈추지만, 그 뒤로도 수십 년을 더 살아요. 동물 가운데 이런 긴 폐경 후 수명이 확인된 것은 사람과 범고래를 포함한 몇몇 이빨고래뿐이에요.

장기 연구에 따르면 나이 든 암컷은 연어가 부족한 해에 무리를 이끌고 먹이터를 찾아가는 역할을 해요. 할머니가 죽으면 그 손주들의 사망률이 눈에 띄게 높아진다는 분석도 나왔어요. 할머니가 직접 잡은 연어를 나누어 주기도 해요. 늙은 암컷이 새끼를 더 낳기보다 이미 있는 가족의 생존을 돕는 편이 유전적으로 유리하다는 ‘할머니 가설’의 대표 사례로 꼽혀요.

7. 먹이

범고래는 종 전체로 보면 물고기, 오징어, 바닷새, 거북, 물범, 바다사자, 돌고래, 대형 고래, 상어까지 먹는 아주 넓은 식성을 가져요. 하지만 개별 집단은 놀랄 만큼 편식이 심해요. 북태평양 정주형은 연어, 그것도 특히 기름진 왕연어를 선호하고, 같은 바다의 비그형은 물고기를 거의 먹지 않아요. 사육 시설로 옮겨진 비그형 범고래가 물고기를 먹으려 하지 않아 굶은 일화도 전해져요.

집단마다 독특한 사냥 기술이 있어요.

  • 파도 만들기: 남극의 일부 범고래는 물범이 떠 있는 얼음 조각을 향해 여러 마리가 나란히 헤엄쳐 큰 파도를 일으키고, 물범을 물속으로 쓸어 떨어뜨려요.
  • 해변 돌진: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와 인도양 크로제 제도의 범고래는 일부러 해변으로 돌진해 바다사자 새끼를 낚아채고 다시 물로 돌아가요. 이 위험한 기술은 어미가 새끼에게 오랫동안 가르쳐요.
  • 회전목마 사냥: 노르웨이 범고래는 청어 떼를 둥글게 몰아 공처럼 뭉치게 한 다음, 꼬리로 쳐서 기절시킨 물고기를 하나씩 먹어요.
  • 대형 고래 사냥: 비그형 무리는 귀신고래나 혹등고래 새끼를 어미에게서 떼어 내 사냥하고, 드물게는 대왕고래 성체까지 쓰러뜨려요.
  • 상어 사냥: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범고래 몇 마리가 백상아리를 사냥해 영양이 풍부한 간만 꺼내 먹는 사례가 기록되었어요. 이후 그 해역에서 백상아리가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어요.

이처럼 범고래는 각 집단이 자기 지역의 먹이에 맞는 ‘전문 기술’을 대대로 이어 오고 있어요.

8. 번식과 일생

범고래는 다른 가족 무리의 개체와 짝을 맺는 경향이 있어서, 가까운 친척끼리의 교배를 피해요. 다만 개체 수가 아주 적은 집단에서는 근친 교배가 확인되어 걱정을 사고 있어요.

임신 기간은 약 15~18개월로, 고래류 가운데서도 긴 편이에요. 새끼는 한 번에 한 마리, 몸길이 약 2~2.6m, 몸무게 약 120~200kg으로 태어나요. 어미는 보통 3~10년 간격으로 새끼를 낳고, 평생 낳는 새끼 수는 대략 4~6마리 정도예요. 새끼의 사망률이 높아서, 첫해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단계나이특징
신생아0~1년흰 무늬가 주황빛, 어미 옆에서 헤엄치며 젖을 먹음
유년기1~10년젖을 떼고 사냥 기술과 방언을 배움
청소년기10~15년수컷은 등지느러미가 빠르게 자라기 시작
성체암컷 약 10~15년부터 번식수컷은 20세 전후에 성장 완료
노년기암컷 40세 이후번식은 멈추지만 가족을 이끄는 역할

수명은 암수 차이가 커요. 암컷은 평균 50년 안팎을 살고 일부는 80년 이상, 100년 가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개체도 있어요. 수컷은 평균 30년 전후, 길게는 50~60년 정도 살아요. 흥미롭게도 다 자란 수컷도 어미가 죽으면 생존율이 크게 떨어진다는 연구가 있어서, ‘엄마 없이는 못 사는 아들’이라는 말이 붙기도 했어요.

9. 지능·의사소통·특별한 능력

범고래의 뇌는 무게가 5~7kg 정도로, 지구 동물 가운데 향유고래 다음으로 무거운 편이에요. 감정과 사회적 정보 처리와 관련된 뇌 부위가 특히 발달해 있다는 연구도 있어요.

범고래의 소리는 클릭음, 휘파람, 그리고 ‘펄스 콜’이라는 독특한 울음으로 나뉘어요. 이 가운데 펄스 콜은 집단마다 레퍼토리가 달라서 ‘방언’이라고 불려요. 같은 바다에 살아도 가족마다 쓰는 울음이 다르고, 새끼는 어미의 울음을 배워요. 사람이 사투리로 고향을 알 수 있듯, 연구자들은 녹음된 울음만으로 어느 가족인지 구별할 수 있어요.

흉내 능력도 뛰어나요. 사육 개체가 큰돌고래나 바다사자의 소리를 따라 하거나, 사람이 하는 단어 몇 개를 흉내 낸 실험이 보고되었어요. 야생에서도 돌고래와 함께 지낸 범고래가 돌고래식 클릭음을 섞어 쓰는 사례가 있었어요.

유행처럼 번지는 이상한 행동도 관찰돼요. 1987년 북태평양의 한 범고래가 죽은 연어를 머리에 모자처럼 얹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몇 주 사이에 다른 무리까지 따라 하다가 이듬해 사라졌어요. 2020년 이후에는 이베리아반도 앞바다의 범고래 무리가 요트의 방향타를 밀고 부수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데, 놀이인지 과거의 나쁜 경험에 대한 반응인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어요.

10. 천적과 생존

범고래는 생태계의 꼭대기에 있는 최상위 포식자라서 자연의 천적이 사실상 없어요. 다른 범고래 집단과의 충돌이나, 사냥 중 큰 먹잇감에게 입는 부상 정도가 자연적인 위험이에요. 비그형 범고래가 다른 무리의 새끼를 공격하는 일이 드물게 기록되었고, 들쇠고래 무리가 범고래를 쫓아내는 듯한 행동도 관찰되었어요.

그래서 범고래의 생존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먹이와 사람이에요. 먹이 피라미드의 맨 위에 있어서 바다에 쌓인 오염 물질이 몸속에 고농도로 모이고, 먹이가 줄면 곧바로 영향을 받아요.

11. 인간과의 관계

북아메리카 북서부 해안의 원주민 문화에서 범고래는 매우 중요한 존재예요. 하이다, 틀링깃, 콰콰카와쿠 같은 민족의 이야기에서 범고래는 바다의 수호자, 사람으로 변하는 존재, 씨족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토템 기둥과 조각, 의복에 범고래 문양이 새겨졌어요.

호주 남동부의 에덴이라는 마을에서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범고래 무리가 포경꾼과 협력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져요. 범고래가 혹등고래를 만 안으로 몰고 꼬리로 수면을 쳐 포경꾼에게 알리면, 사람들은 고래를 잡은 뒤 범고래가 좋아하는 혀와 입술 부위를 남겨 주었다는 거예요.

반면 20세기 중반까지 범고래는 어업을 방해하는 해로운 동물로 여겨져 총에 맞거나 잡히는 일이 많았어요. 1960년대부터는 수족관에 산 채로 잡혀 가기 시작했고, 특히 북태평양 남부 정주형은 이때 수십 마리가 포획되어 개체 수가 크게 줄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수족관에서 범고래를 가까이 보면서 ‘무서운 살인 고래’라는 인식이 ‘똑똑하고 사회적인 동물’로 바뀌었고, 이것이 야생 범고래 보호 운동의 계기가 되었어요.

오늘날에는 야생 범고래 관찰 관광이 북미와 노르웨이 등에서 큰 산업이 되었어요. 다만 관광선이 너무 많으면 소음 때문에 범고래의 사냥이 방해받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접근 거리를 400m 이상으로 늘리는 등 규제를 강화했어요.

12. 보전 현황

범고래는 IUCN 적색목록에서 정보부족(DD)으로 평가되어 있어요. 전 세계에 수만 마리, 대략 5만 마리 이상이 산다고 추정하는 자료가 많지만, 생태형마다 상황이 너무 다르고 앞으로 여러 종으로 나뉠 가능성이 있어서 종 전체의 등급을 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종 전체는 흔해 보여도, 일부 집단은 매우 위험한 상태예요. 대표적인 것이 북태평양 남부 정주형으로, 2020년대 들어 70마리 남짓에 머물러 있어요. 미국과 캐나다 모두 이 집단을 멸종위기 집단으로 지정했어요. 지중해 지브롤터 해협 집단은 수십 마리 수준이고, 영국 서해안의 한 작은 무리는 수십 년 동안 새끼가 태어나지 않아 사실상 사라질 위기에 있어요.

주요 위협 요인은 다음과 같아요.

  • 먹이 감소: 왕연어 감소가 남부 정주형의 가장 큰 위협이에요. 댐 건설과 서식지 파괴가 연어를 줄였어요.
  • 오염: 범고래는 PCB 같은 잔류성 오염물질 농도가 가장 높은 동물 가운데 하나예요. 2018년 연구는 오염 때문에 세계 범고래 집단의 절반 이상이 수십 년 안에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어요.
  • 소음과 선박: 배의 소음이 반향정위를 방해해 먹이 찾기를 어렵게 해요.
  • 기름 유출: 1989년 알래스카 원유 유출 사고 이후 일부 범고래 무리가 크게 줄고 회복하지 못했어요.
  • 어업과의 충돌: 연승 어업의 미끼를 빼앗아 먹다가 총에 맞거나 그물에 걸리는 일이 있어요.

범고래는 CITES 부속서 II에 올라 있어요. 한국에서는 1986년 이후 고래를 일부러 잡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범고래도 이 규제를 받아요. 개별 해양보호생물 지정 여부는 고시 개정에 따라 바뀔 수 있어 최신 목록을 확인하는 것이 좋아요.

13. 동물원·수족관에서

범고래 사육은 동물 복지 논쟁에서 가장 상징적인 주제예요. 1960년대 이후 범고래 공연은 대형 해양 테마파크의 간판 프로그램이 되었고, 한때 수십 마리가 전 세계 수조에서 살았어요.

하지만 사육 범고래에게서 여러 문제가 보고되었어요.

  • 야생에서는 하루 100km 이상 이동하기도 하는 동물에게 수조는 매우 좁아요.
  • 수컷의 등지느러미가 옆으로 꺾이는 현상이 사육 개체에서 매우 흔한데, 야생에서는 드물어요.
  • 지루함과 스트레스로 콘크리트 벽을 갉아 이빨이 심하게 닳거나 부러지는 일이 많아요.
  • 서로 다른 집단 출신을 한 수조에 넣으면 서열 다툼으로 다치는 일이 생겨요.
  • 사육 범고래가 사육사를 다치게 하거나 숨지게 한 사고가 여러 차례 있었어요.
  • 평균 수명이 야생보다 짧다는 분석이 많지만, 최근에는 차이가 줄었다는 주장도 있어 논쟁이 있어요.

2013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사육 범고래 문제를 대중에게 크게 알리면서 여론이 바뀌었고, 2016년 미국의 대표적인 해양 테마파크 기업이 범고래 번식 중단을 발표했어요. 캐나다는 2019년 법으로 고래류의 사육과 번식을 금지했고, 프랑스도 비슷한 금지를 도입했어요. 아직 사육 중인 개체들을 위한 대안으로 바다 쉼터가 논의되고 있지만, 오랫동안 사람 손에 길러진 범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은 매우 어려워요. 1990년대 영화 출연으로 유명해진 한 수컷 범고래가 실제로 바다로 돌아갔지만 야생 무리에 끝내 합류하지 못하고 몇 년 뒤 숨진 사례가 이를 보여 줘요.

14. 대중문화 속 범고래

범고래는 대중문화에서 공포와 친근함이라는 두 얼굴을 모두 가졌어요. 1970년대에는 상어 영화의 인기를 따라 복수심에 불타는 범고래를 그린 공포 영화가 만들어졌어요. 반대로 1993년 개봉한 가족 영화는 수족관에 갇힌 범고래와 소년의 우정을 그려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주인공 범고래를 실제로 바다로 돌려보내자는 운동까지 일어났어요.

북태평양 연안에서 범고래는 지역의 상징이에요. 캐나다 밴쿠버의 프로 아이스하키 팀 로고에 범고래가 들어가 있고, 미국 워싱턴주는 범고래를 주의 해양 포유류로 지정했어요. 2018년에는 남부 정주형의 한 어미 범고래가 죽은 새끼를 17일 동안 머리에 얹고 1,000km 넘게 헤엄친 모습이 전 세계에 보도되며 많은 사람을 울렸어요. 연구자들은 이를 슬픔의 표현으로 볼 수 있는지 신중하게 논의했지만, 범고래의 깊은 가족 유대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어요.

일본에서는 범고래를 뜻하는 ‘샤치’가 성 지붕 끝의 장식 ‘샤치호코’와 같은 이름이고, 이 상상의 동물은 불을 막는 부적처럼 여겨졌어요. 최근 이베리아반도의 범고래가 요트를 공격하는 뉴스가 나오자, 인터넷에서는 범고래를 ‘인간에게 맞서는 바다의 혁명가’로 표현하는 밈이 유행하기도 했어요.

15. 여담

  • 범고래는 바다에서 가장 빠른 포유류 가운데 하나로, 짧은 순간에는 시속 50km 가까이 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 범고래의 흰 눈 반점은 실제 눈이 아니에요. 진짜 눈은 반점 앞쪽 아래, 검은 부분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아요.
  • 남극의 일부 범고래는 규조류가 붙어 몸이 누렇게 보이기도 해요.
  • 야생 범고래가 사람을 먹잇감으로 공격한 확실한 기록은 없어요. 그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범고래가 익숙하지 않은 먹이를 잘 시도하지 않는 보수적인 식성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많아요.
  • 범고래 무리 가운데 같은 바다에 살면서 수천 년 동안 서로 짝을 맺지 않은 집단도 있어요.
  • 범고래는 하루에 몸무게의 약 2.5~4% 정도를 먹는다고 추정돼요.
  • 범고래의 학명과 같은 ‘Orca’라는 이름은 여러 배, 잠수정, 소프트웨어 이름에도 쓰였어요.

야생동물은 반려동물이 아니에요. 포획·거래·사육은 대부분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다친 야생동물을 발견하면 지역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연락하세요.

자주 묻는 질문

범고래는 고래인가요, 돌고래인가요?

이름에는 ‘고래’가 붙지만 분류학적으로는 참돌고래과에 속하는 돌고래예요. 돌고래 가운데 가장 크고, 고래와 돌고래의 구분 자체가 크기에 따른 관습적인 표현이에요.

범고래는 사람을 공격하나요?

야생 범고래가 사람을 먹잇감으로 공격해 죽인 확실한 기록은 없어요. 다만 사육 범고래가 사육사를 다치게 하거나 숨지게 한 사고는 여러 번 있었어요. 야생에서도 거리를 지켜 관찰해야 해요.

왜 IUCN 등급이 ‘정보부족’인가요?

전 세계에 수만 마리가 사는 것으로 보이지만, 생태형마다 상황이 크게 다르고 앞으로 여러 종으로 나뉠 가능성이 있어 종 전체의 등급을 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북태평양 남부 정주형처럼 70여 마리만 남은 위기 집단도 있어요.

사진 출처

사진은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의 자유 이용 허락 사진이에요. 각 사진의 작가와 라이선스는 아래와 같아요.

  1. Killerwhales jumping.jpg — Robert Pittman · Public domain
  2. KW attack STBW.jpg — Rebecca Wellard, Project ORCA, (www.projectorca.com.au). · CC BY-SA 4.0
  3. Killer Whale chasing Chinook.jpg — Oregon State University · CC BY-SA 2.0
  4. Killer Whales Hunting a Crabeater Seal.jpg — Callan Carpenter · CC BY 4.0

같은 무리의 동물

사자
사자고양잇과 가운데 유일하게 가족 무리를 이루어 사는 대형 육식동물이에요. 아프리카 사바나와 인도 기르 숲에만 남아 있고, 개체 수가 꾸준히 줄고 있어요.
포유류VU · 취약
호랑이
호랑이고양잇과에서 가장 큰 종으로, 줄무늬 덕분에 숲속에서 몸을 감추는 단독 사냥꾼이에요. 한국인에게는 산신이자 민족의 상징이지만 야생에는 수천 마리만 남았어요.
포유류EN · 위기
치타
치타순간 시속 100km 안팎을 내는 지구에서 가장 빠른 육상동물이에요. 속도를 위해 힘을 포기한 몸이라, 먹이를 다른 맹수에게 자주 빼앗겨요.
포유류VU · 취약
아프리카코끼리
아프리카코끼리현재 땅 위에 사는 동물 중 가장 크고 무거운 종이에요. 어미를 중심으로 한 가족 무리, 뛰어난 기억력, 초원을 가꾸는 생태계 엔지니어 역할로 유명해요.
포유류EN ·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