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겨울 새벽, 강원도 철원 평야의 얼지 않은 여울에서 하얀 몸에 검은 목, 머리 꼭대기가 붉은 커다란 새들이 한쪽 다리로 선 채 잠에서 깨어나요. 해가 뜨면 '뚜루루, 뚜루루' 하는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날아올라 눈 덮인 논으로 향해요. 비무장지대 주변의 겨울을 상징하는 이 새가 두루미예요.
두루미는 두루미과에 속하는 대형 조류로, 키가 1.5m에 이르고 몸무게가 10kg 가까이 나가서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두루미 가운데 하나예요. 몸은 순백색이고, 목과 날개 뒤쪽의 비행깃 일부가 검은색이며, 정수리에 깃털 없이 드러난 붉은 맨살이 있어요. 이 붉은 정수리 때문에 한자로는 '붉은 정수리의 학'이라는 뜻의 단정학(丹頂鶴)이라고 불러요.
러시아 극동과 중국 동북부의 습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한반도와 중국 동부 해안으로 내려와요. 일본 홋카이도 동부에는 1년 내내 머무는 텃새 집단이 따로 살아요. 한국은 대륙 집단의 중요한 월동지로, 특히 철원·연천·파주의 비무장지대 주변과 강화도 갯벌이 핵심 지역이에요.
동아시아에서 두루미는 예부터 장수와 고결함,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새였어요. 학이라는 이름으로 그림과 시, 춤, 관복의 문양에 등장했고, 지금도 한국의 500원 동전에 새겨져 있어요. 하지만 전 세계에 수천 마리만 남은 희귀한 새로, IUCN 적색목록 취약(VU) 등급이며 한국에서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이에요.
2. 이름과 분류

Spaceaero2 · CC BY-SA 3.0
학명은 Grus japonensis예요. 속명 Grus는 라틴어로 두루미를 뜻하고, 종소명 japonensis는 '일본의'라는 뜻이에요. 19세기 서양 학자들이 일본에서 얻은 표본으로 처음 기재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 분포의 중심은 대륙이에요. 영어 이름은 Red-crowned crane이고, Japanese crane, Manchurian crane이라고도 불러요.
한국어 이름 두루미는 울음소리에서 왔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어요. 멀리 퍼지는 '뚜루루' 하는 울음을 흉내 낸 말이라는 거예요. 한자어로는 학(鶴)이라고 하며, 옛 문헌과 그림 속의 학은 대부분 두루미를 가리켜요. 흔히 하얀 새라면 모두 학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논에서 흔히 보는 백로나 왜가리, 황새는 두루미와 전혀 다른 무리예요. 날 때 목을 S자로 접으면 백로·왜가리 무리, 목을 곧게 뻗으면 두루미나 황새 무리라고 구별할 수 있어요.
두루미는 아종을 따로 나누지 않아요. 다만 대륙 집단과 홋카이도 집단은 오랫동안 서로 교류가 거의 없어서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연구가 있어요.
한국에 찾아오는 두루미과의 새는 여러 종이에요.
| 종 | 학명 | 한국에서의 모습 |
|---|---|---|
| 두루미 | Grus japonensis | 철원·연천·파주·강화의 겨울 철새 |
| 재두루미 | Antigone vipio | 철원·한강 하구·주남저수지 등의 겨울 철새, 눈가가 붉고 몸이 회색 |
| 흑두루미 | Grus monacha | 순천만·천수만 등을 찾는 겨울 철새·나그네새, 몸이 검회색 |
| 시베리아흰두루미 | Leucogeranus leucogeranus | 매우 드문 길 잃은 새 |
| 검은목두루미 | Grus grus | 드문 겨울 철새 |
3. 진화
두루미과는 아주 오래된 새 무리예요. 두루미와 비슷한 새의 화석은 수천만 년 전 에오세 지층에서도 발견된다는 보고가 있고, 지금의 두루미속과 비슷한 화석은 마이오세 무렵부터 나타나요. 두루미과는 뜸부기, 물닭, 느시 같은 새들과 함께 두루미목에 속해요.
현재 두루미과에는 15종이 있어요. 이 가운데 두루미는 검은목두루미, 흑두루미, 아메리카흰두루미(미국흰두루미), 티베트고원에 사는 Grus nigricollis 등과 함께 Grus속에 속해요. 유전자 연구에서는 두루미가 북아메리카의 아메리카흰두루미와 특히 가까운 관계로 나타나요. 두 종 모두 몸이 희고 정수리에 붉은 맨살이 있는 점이 닮았어요. 이 두 종의 공통 조상은 과거 베링 육교를 통해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사이를 오갔던 두루미 무리에서 갈라졌다고 추정돼요. 정확한 분화 시기는 연구마다 차이가 있어요.
두루미가 지금처럼 동아시아의 습지에 적응한 것은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습지가 넓어지고 줄어드는 과정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여요. 빙하기에는 번식지가 남쪽으로 밀려났다가, 따뜻해지면 다시 북쪽으로 넓어졌을 거예요.
4. 분포와 서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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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는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뉘어요.
대륙 집단은 러시아 극동의 아무르강과 우수리강 유역, 중국 동북부의 헤이룽장성과 지린성, 네이멍구 동부, 몽골 동부의 넓은 습지에서 번식해요. 중국 헤이룽장성의 자룽 습지는 대표적인 번식지로 유명해요. 가을이 되면 이들은 남쪽으로 이동해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주변과 서해안, 중국 장쑤성 옌청의 해안 습지 등에서 겨울을 나요.
홋카이도 집단은 일본 홋카이도 동부의 구시로 습원과 그 주변에서 1년 내내 살아요. 겨울에도 먼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사람이 주는 먹이와 얼지 않는 강을 이용해 겨울을 나요.
번식지는 갈대와 사초가 무성하고 물이 얕게 고인 넓은 습지예요. 사람의 방해가 적고, 둥지를 숨길 수 있는 키 큰 풀과 먹이를 찾을 얕은 물이 함께 있어야 해요. 월동지에서는 추수가 끝난 논, 강 하구의 갯벌, 얼지 않는 여울과 하천이 중요해요. 밤에는 여우 같은 포식자가 다가오기 어려운 얕은 물속에 서서 잠을 자요.
한반도에서는 강원도 철원 평야가 가장 중요한 월동지예요. 철원은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 덕분에 사람의 방해가 적고, 넓은 논과 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솟아 얼지 않는 여울이 있어 두루미가 머물기에 좋아요. 경기도 연천의 임진강 유역, 파주의 임진강·한강 하구, 인천 강화도와 주변 갯벌에서도 두루미 무리를 볼 수 있어요. 과거에는 한반도의 더 넓은 지역, 북한의 서해안과 내륙 습지에서도 월동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5. 신체 특징
두루미는 두루미과 가운데서도 몸집이 크고 무거운 편이에요. 수컷이 암컷보다 조금 더 크지만 겉모습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워요.
| 항목 | 수치 |
|---|---|
| 키 | 약 150~158cm |
| 몸길이 | 약 140cm 안팎 |
| 날개 편 길이 | 약 2.2~2.5m |
| 몸무게 | 약 7~10kg, 큰 수컷은 10kg 이상 |
| 부리 길이 | 약 15~17cm |
몸은 순백색이에요. 얼굴 앞부분과 목은 검고, 눈 뒤에서 뒷목까지 흰 띠가 이어져요. 날개를 접고 서 있으면 엉덩이 쪽에 검은 깃털이 늘어져 마치 검은 꼬리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사실 꼬리가 아니라 날개 안쪽의 셋째날개깃이에요. 날개를 펴면 검은 부분이 날개 뒤쪽 가장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정수리의 붉은 부분은 깃털이 아니라 맨살이에요. 흥분하거나 긴장하면 이 부분이 부풀고 색이 더 진해져요. 어린 새는 정수리가 갈색 깃털로 덮여 있고, 몸에도 갈색 깃털이 섞여 있어서 어른과 쉽게 구별돼요. 다리는 길고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이며, 발가락은 길지만 물갈퀴는 거의 없어요.
5.1. 울음 기관
두루미의 울음소리가 수 킬로미터 밖까지 들리는 비밀은 몸속에 있어요. 두루미의 기관(숨관)은 아주 길어서, 가슴뼈(용골돌기) 속으로 들어가 고리 모양으로 감겨 있어요. 다 자란 두루미의 기관 길이는 1.5m 안팎에 이른다고 해요. 이 긴 관이 금관악기처럼 소리를 울려서 낮고 크고 멀리 퍼지는 소리를 만들어요. 어린 새는 기관이 아직 덜 감겨 있어서 울음소리가 높고 가늘어요.
6. 생태와 습성
두루미는 낮에 활동해요. 월동지에서의 하루는 비교적 규칙적이에요. 새벽에 잠자리인 여울이나 얕은 강에서 깨어나 깃털을 다듬고, 해가 뜨면 가족 단위로 날아올라 근처의 논으로 이동해요. 낮 동안 논에서 떨어진 벼 낱알과 풀뿌리, 작은 동물을 찾아 먹고, 해 질 무렵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요.
두루미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족이에요. 부부와 그해 태어난 새끼 1~2마리가 함께 이동하고 함께 먹이를 찾아요. 월동지에서는 여러 가족이 모여 큰 무리를 이루지만, 그 안에서도 가족끼리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철원 평야에서 두루미를 관찰하면, 어른 두 마리 사이에 갈색빛이 도는 어린 새가 끼어 있는 모습이 흔해요.
번식기에는 부부가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다른 두루미가 들어오지 못하게 지켜요. 영역 넓이는 습지 상태에 따라 수 제곱킬로미터에 이르기도 해요.
대륙 집단은 해마다 번식지와 월동지 사이를 오가는 철새예요. 가을에는 10월 무렵 한반도에 도착하기 시작해 11월에 수가 크게 늘고, 이듬해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에 북쪽 번식지로 떠나요. 이동할 때는 상승기류를 타고 높이 올라가 V자나 일렬로 날아가며, 이동 중에도 서로 울음소리로 연락해요. 위치 추적 연구에서는 한반도에서 월동한 두루미가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의 번식지까지 수백에서 천 킬로미터 넘게 이동하는 경로가 확인되었어요.
7. 먹이
두루미는 동물성 먹이와 식물성 먹이를 모두 먹는 잡식성이에요. 계절에 따라 먹는 것이 크게 달라져요.
번식기인 봄과 여름에는 습지의 동물성 먹이를 많이 먹어요.
- 미꾸라지, 붕어 같은 작은 물고기
- 개구리와 올챙이
- 게, 새우, 우렁이 같은 무척추동물
- 수서곤충과 곤충 유충
- 들쥐 같은 작은 포유류, 다른 새의 알이나 새끼
겨울 월동지에서는 식물성 먹이의 비중이 높아져요.
- 추수 후 논에 떨어진 벼 낱알(낙곡)
- 옥수수와 콩 같은 곡물
- 풀뿌리와 덩이줄기, 새싹
- 얕은 강과 갯벌의 물고기와 갯지렁이, 조개
두루미는 긴 부리로 땅을 쪼거나 진흙 속을 파서 먹이를 찾아요. 물가에서는 천천히 걸으며 물고기와 개구리를 노리다가 부리로 재빨리 낚아채요. 겨울철 철원 평야에서는 논바닥의 볏짚 사이를 뒤지며 떨어진 낟알을 주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강화도 갯벌에서는 칠면초가 자라는 갯벌을 파서 먹이를 찾기도 해요.
최근에는 추수할 때 콤바인이 볏짚을 잘게 잘라 땅에 뿌리거나, 볏짚을 원형으로 말아 가축 사료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아져서 논에 남는 낙곡이 줄었어요. 그래서 철원 등에서는 농민과 지자체, 환경 단체가 함께 볏짚을 논에 남겨 두거나 겨울철에 먹이를 나눠 주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8. 번식과 일생
두루미는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함께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동아시아에서는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새로 여겨졌어요. 짝을 맺고 유지하는 데는 춤과 울음이 중요한 역할을 해요.
봄에 번식지에 도착한 부부는 습지 한가운데의 갈대밭에 둥지를 만들어요. 둥지는 갈대와 마른 풀을 쌓아 만든 넓고 평평한 더미로, 지름이 1m를 넘기도 해요. 물이 둘러싸고 있어서 여우나 너구리 같은 포식자가 다가오기 어려워요.
알은 보통 2개를 낳아요. 암수가 번갈아 약 29~34일 동안 품어요. 새끼는 부화하고 하루 이틀이면 둥지를 떠나 부모를 따라 걸어 다니며, 부모가 잡아 주는 먹이를 받아먹어요. 알이 두 개라도 실제로 두 마리 모두 무사히 자라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먼저 깬 새끼가 동생을 공격하거나, 먹이가 부족해 한 마리만 살아남는 경우가 흔해요. 그래서 월동지에서 보는 가족은 새끼가 한 마리인 경우가 많아요.
| 단계 | 시기 | 특징 |
|---|---|---|
| 알 | 약 29~34일 | 갈대 둥지, 암수 교대 포란 |
| 새끼 | 부화 후 1~2일 | 갈색 솜털, 둥지를 떠나 부모를 따라다님 |
| 어린 새 | 부화 후 약 3개월 | 첫 비행 (약 95일 안팎) |
| 첫 이동 | 가을 | 부모와 함께 월동지로 이동 |
| 독립 | 이듬해 봄 | 번식지로 돌아가며 부모와 헤어짐 |
| 아성조 | 1~3년 | 젊은 새끼리 무리 지어 생활 |
| 첫 번식 | 보통 3~4년 이후 | 짝을 맺고 영역을 차지 |
새끼는 첫 가을에 부모와 함께 월동지로 날아가요. 이 첫 이동에서 이동 경로와 월동지, 먹이터를 배우는 것으로 여겨져요. 이듬해 봄 번식지로 돌아갈 무렵 부모는 새로운 번식을 준비하며 새끼를 떠나보내요.
두루미는 오래 사는 새예요. 야생에서는 30년 이상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사육 상태에서는 그보다 훨씬 오래 산 기록이 있어요. 동아시아에서 두루미가 '천년을 사는 새'로 여겨진 것도 이렇게 수명이 긴 점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물론 실제로 천 년을 살지는 않아요.
9. 지능·의사소통·특별한 능력
두루미는 춤추는 새로 유명해요. 고개를 숙여 절하듯 인사하고, 날개를 반쯤 펼친 채 깡충깡충 뛰어오르고, 풀이나 나뭇가지를 부리로 집어 공중에 던지고, 빙글빙글 돌기도 해요. 이 춤은 짝짓기 철에 가장 활발하지만, 사실 1년 내내 볼 수 있어요. 겨울 철원 평야에서도 두루미 부부가 서로 마주 보고 뛰어오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어요. 춤은 구애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의 유대를 다지고, 긴장을 풀고, 어린 새가 사회성을 익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여겨져요. 한 마리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 주변의 다른 두루미들도 따라 추는 경우가 있어요.
두루미의 또 다른 의사소통 방법은 '듀엣 울음(합창 울음)'이에요. 부부가 나란히 서서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수컷과 암컷이 서로 다른 소리를 정해진 순서로 주고받으며 울어요. 수컷은 날개를 들어 올리며 길고 낮은 소리를 내고, 암컷은 짧고 높은 소리를 두 번씩 내는 식이에요. 이 듀엣은 부부의 유대를 확인하고, 다른 두루미들에게 '여기는 우리 영역'이라고 알리는 역할을 해요. 바람이 없는 날에는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려요.
두루미는 기억력도 좋아요. 해마다 같은 경로로 이동하고, 같은 월동지와 같은 먹이터, 같은 잠자리를 다시 찾아와요. 철원 평야에서는 매년 같은 논에 같은 가족이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또 사람의 행동을 잘 관찰해서, 농기계나 차량은 크게 경계하지 않으면서도 차에서 사람이 내리면 금방 경계하고 날아가요.
10. 천적과 생존
다 자란 두루미는 몸집이 크고 부리와 발이 강해서 천적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번식지에서는 알과 새끼가 여우, 너구리, 늑대, 까마귀, 큰 맹금류의 공격을 받을 수 있어요. 습지에 물이 충분하면 둥지가 물에 둘러싸여 포식자가 접근하기 어렵지만, 가뭄으로 습지가 마르면 피해가 크게 늘어요. 부모는 포식자가 다가오면 날개를 펼치고 소리를 지르며 맞서거나, 다친 척하며 포식자의 관심을 끌어요.
월동지에서는 밤에 얕은 물속에서 자는 습성이 여우나 들개 같은 포식자를 피하는 중요한 방법이에요. 물이 얼어 버리면 포식자가 얼음 위로 다가올 수 있어서, 얼지 않는 여울이 생존에 꼭 필요해요. 철원의 두루미가 특정 여울에 모여 자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그러나 오늘날 두루미의 생존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사람과 관련된 요인이에요. 전깃줄과 송전탑에 부딪히는 사고, 농약과 독극물 중독, 조류 인플루엔자 같은 질병, 그리고 번식지와 월동지의 습지가 사라지는 것이 대표적이에요. 큰 몸집과 긴 날개 때문에 두루미는 전깃줄을 피하기 어려워서, 월동지 주변의 전깃줄 충돌은 중요한 사망 원인이에요.
11. 인간과의 관계
두루미는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특별한 새였어요. 중국, 한국, 일본에서 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 천 년을 사는 새, 고고한 선비의 기상을 지닌 새로 여겨졌어요.
한국에서 두루미는 특히 선비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어요. 조선 시대 문신(문관)의 관복 가슴과 등에 붙이는 흉배에는 학이 수놓아졌어요. 품계가 높은 당상관은 두 마리의 학(쌍학), 그보다 낮은 당하관은 한 마리의 학(단학)을 수놓은 흉배를 달았어요. 무신의 흉배에 호랑이가 수놓아진 것과 대비돼요. 또 학은 오래 사는 것을 상징하는 열 가지 사물인 십장생 가운데 하나로, 십장생도 병풍과 도자기, 자수에 자주 그려졌어요. 고려청자의 대표작인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에도 구름 사이를 나는 학이 새겨져 있어요.
두루미의 춤을 본뜬 학춤도 전해져요. 부산의 동래학춤은 선비들이 두루미가 노니는 모습을 흉내 내어 추었다는 춤으로,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요. 궁중무용 가운데에도 학의 탈을 쓰고 추는 학무가 있어요.
한편 근대 이후 두루미는 큰 시련을 겪었어요. 20세기 전반 사냥과 습지 개간으로 한반도와 대륙의 두루미가 크게 줄었고,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며 많은 습지가 사라졌어요. 역설적이게도 전쟁이 남긴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이 사람의 출입을 막으면서 두루미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어요. 철원 평야는 그렇게 세계적인 두루미 월동지가 되었어요.
오늘날 철원에서는 농민들이 볏짚을 논에 남겨 두고, 지자체가 무논(물을 댄 논)을 만들어 잠자리를 제공하며, 겨울철 먹이 주기 활동을 해요. 철원에는 두루미를 주제로 한 탐조 프로그램과 관련 시설도 있어 생태 관광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렇게 두루미 보호는 지역 농업과 관광, 남북 접경 지역의 생태 보전이 함께 얽힌 이야기가 되었어요.
12. 보전 현황
IUCN 적색목록에서 두루미는 오랫동안 위기(EN) 등급이었다가, 2021년 평가에서 취약(VU)으로 한 단계 내려갔어요. 홋카이도 집단이 보호 활동으로 크게 늘어난 것이 반영된 결과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두루미 가운데 하나예요.
전 세계 개체 수는 대략 3천~4천 마리 안팎으로 추정되지만, 조사 방법과 시기에 따라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요. 홋카이도 집단은 1920년대에 수십 마리 수준까지 줄었다가, 겨울철 먹이 주기와 습지 보호 덕분에 지금은 1천 마리를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반면 대륙 집단은 번식지 습지가 줄어들면서 감소하거나 정체된 것으로 평가돼요. 한반도에서 겨울을 나는 두루미는 해마다 1천~2천 마리 안팎으로 조사되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철원 일대에 모여요. 다만 조사마다 숫자의 차이가 있어요.
주요 위협 요인은 다음과 같아요.
-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번식지의 습지 개간과 농지 전환, 댐 건설, 가뭄과 화재
- 월동지의 개발, 논의 감소와 농업 방식 변화(낙곡 감소)
- 전깃줄과 송전탑 충돌
- 조류 인플루엔자 등 질병, 좁은 장소에 많은 개체가 모이면서 커지는 집단 감염 위험
- 농약 중독과 밀렵
- 접경 지역 개발 계획이 비무장지대 주변 서식지에 미칠 영향
한국에서는 국가유산청 지정 천연기념물이자,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이에요. 철원 평야 일부 등은 두루미 도래지로 보호 지역이 지정되어 있어요. 국제적으로는 CITES 부속서 I에 올라 국제 거래가 엄격히 금지돼요.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몽골은 공동 조사와 위치 추적 연구,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 협력 등을 통해 함께 두루미를 보호하고 있어요. 철새는 국경을 넘나들기 때문에, 한 나라만의 노력으로는 지킬 수 없는 새예요.
13. 동물원과 복원 사업
두루미는 세계 여러 동물원에서 사육되고 있어요. 멸종위기종이라서 동물원끼리 혈통을 관리하며 번식시키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사육 번식으로 태어난 개체를 연구와 교육에 활용해요. 사육 상태의 두루미도 춤과 듀엣 울음을 보여 줘서 관람객에게 인기가 많아요.
하지만 두루미는 넓은 습지를 걸어 다니고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새라서, 좁은 사육장에서는 본래의 습성을 충분히 드러내기 어려워요. 날지 못하도록 날개 끝을 잘라 내는 처치는 동물 복지 측면에서 논란이 있어요. 번식기에는 사육사에게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해요.
한국에서는 사육 번식과 함께, 야생에서 다쳐 구조된 두루미를 치료해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활동이 중요해요. 전깃줄에 부딪히거나 중독되어 구조된 두루미가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치료받은 뒤 위치 추적기를 달고 방사되어, 번식지까지 이동하는 경로가 확인된 사례도 있어요. 두루미는 어떤 경우에도 개인이 기를 수 있는 새가 아니며, 허가 없이 포획하거나 기르면 처벌받아요.
14. 대중문화 속 두루미
두루미는 동아시아 예술과 일상 곳곳에 등장해요. 한국의 500원 동전 앞면에는 1982년 처음 발행될 때부터 날개를 펼치고 나는 학이 새겨져 있어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두루미를 손에 쥐는 셈이에요. 또 여러 지자체와 기관이 두루미를 상징 새로 정하고 있어요.
한국의 옛 그림에서 두루미는 소나무와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요. 소나무와 학은 둘 다 장수를 상징해서 '송학도'라는 이름으로 사랑받았어요. 실제로 두루미는 나무에 앉지 않고 땅이나 물가에서 생활하는데, 그림 속에서는 소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는 나무 위에 둥지를 트는 황새와 혼동되었거나, 상징을 위해 함께 그린 것이라는 해석이 있어요.
일본에서도 두루미(쓰루)는 장수와 행운의 상징이에요. 종이학을 천 마리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천 마리 종이학' 풍습이 있는데, 히로시마 원폭 피해로 백혈병에 걸린 소녀 사사키 사다코가 병상에서 종이학을 접은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종이학은 평화의 상징이 되었어요. 한국에서도 종이학을 접어 선물하는 문화가 한때 크게 유행했어요. 일본항공(JAL)의 로고도 붉은 원 안에 두루미의 모습을 담은 디자인으로 유명해요.
중국에서는 학이 신선의 탈것이자 장수의 상징으로, 도교 그림에 자주 등장해요. 명·청 시대 문관 1품의 관복 문양도 학이었어요. 무협 소설과 영화에서는 학의 자세를 본뜬 무술 동작이 자주 나와요.
속담과 표현에도 두루미가 있어요. 한국어의 '학수고대(鶴首苦待)'는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애타게 기다린다는 뜻이고, '군계일학(群鷄一鶴)'은 닭 무리 속의 학 한 마리처럼 여럿 가운데 뛰어난 사람을 가리켜요.
15. 여담
- 두루미는 나무에 앉지 않아요. 발가락 구조가 나뭇가지를 움켜쥐기에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소나무 위의 학 그림은 실제 모습과는 달라요.
- 두루미가 한쪽 다리로 서서 자는 것은 체온을 아끼기 위한 행동으로 여겨져요. 다리를 번갈아 바꾸며 쉬어요.
- 철원의 두루미 잠자리 가운데에는 겨울에도 땅속에서 따뜻한 물이 솟아 얼지 않는 여울이 있어서, 한겨울 아침에 물안개 속에서 두루미가 깨어나는 장면을 볼 수 있어요.
-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철원 평야에서 함께 겨울을 나는 경우가 많아요. 재두루미는 몸이 회색이고 눈 주위가 붉어서 쉽게 구별돼요.
- 일본 홋카이도의 두루미 집단은 1920년대 사라진 줄 알았다가 구시로 습원에서 십여 마리가 다시 발견되었고, 주민들의 겨울 먹이 주기로 지금처럼 늘어났어요.
- 두루미의 날개를 펴면 2m가 넘어서,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면 하늘이 하얗게 덮이는 듯한 장관이 펼쳐져요.
- 탐조할 때 두루미가 고개를 들고 경계하는 자세를 보이면 이미 사람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럴 때는 더 다가가지 말고 조용히 물러나야 해요.
야생동물은 반려동물이 아니에요. 포획·거래·사육은 대부분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다친 야생동물을 발견하면 지역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연락하세요.
자주 묻는 질문
두루미와 학은 같은 새예요?
네, 학(鶴)은 두루미를 가리키는 한자어예요. 옛 그림과 시에 나오는 학은 대부분 두루미예요. 다만 흔히 '학'이라 부르며 혼동하는 백로나 황새는 전혀 다른 새예요.
언제, 어디서 볼 수 있어요?
보통 10월 말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 강원도 철원 평야에 가장 많이 모이고, 연천·파주 임진강 유역과 강화 갯벌에서도 볼 수 있어요. 탐조할 때는 차에서 내리지 말거나 멀리 떨어져서 조용히 봐야 두루미가 놀라 날아가지 않아요.
왜 비무장지대 근처에 많이 모여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덕분에 사람의 방해가 적고, 넓은 논에 떨어진 벼 낱알과 겨울에도 얼지 않는 여울이 있어 먹고 잠자기에 좋기 때문이에요. 농민과 지자체의 볏짚 남기기·먹이 주기 활동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사진 출처
사진은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의 자유 이용 허락 사진이에요. 각 사진의 작가와 라이선스는 아래와 같아요.
- Grus japonensis -Hokkaido, Japan -several-8 (1).jpg — Alastair Rae from London, United Kingdom · CC BY-SA 2.0
- Grus japonensis in flight at Akan International Crane Center.jpg — Spaceaero2 · CC BY-SA 3.0
- Grünau Manschurenkranich Grus japonensis-0835.jpg — Isiwal · CC BY-SA 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