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수백 년 동안 뱃사람들은 바다 깊은 곳에 배를 휘감아 끌어내리는 거대한 괴물이 산다고 믿었어요. 북유럽 전설 속 크라켄이에요. 오늘날 학자들은 이 전설의 상당 부분이 실제 동물, 대왕오징어(Architeuthis dux)를 보고 생긴 것이라고 봐요.
대왕오징어는 촉완(먹이를 잡는 긴 팔 두 개)까지 포함하면 몸길이가 10m를 훌쩍 넘을 수 있는 거대한 오징어예요. 동물 가운데 가장 큰 눈을 가진 축에 들고, 수심 수백 m의 어두운 심해에서 살아요. 그런데도 살아 있는 모습이 처음 사진에 찍힌 것은 2004년, 자연 서식지에서 영상으로 촬영된 것은 2012년일 정도로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어요.
지금까지 대왕오징어에 대해 알려진 사실의 대부분은 해안에 떠밀려 온 사체, 어망에 걸린 개체, 그리고 천적인 향유고래의 위 속에서 나온 부리 같은 간접 증거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여전히 몇 살까지 사는지, 몇 마리가 사는지, 어떻게 짝을 찾는지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도 확실한 답이 없어요.
대왕오징어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지구'를 상징하는 동물이에요. 사람이 가장 큰 오징어를 제대로 본 지 불과 2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심해가 얼마나 탐사되지 않은 곳인지 잘 보여 줘요.
2. 이름과 분류

NASA · Public domain
대왕오징어는 연체동물문 두족강(Cephalopoda) 살오징어목(Oegopsida) 대왕오징어과(Architeuthidae)에 속해요. 두족류는 '머리에 다리가 달린 동물'이라는 뜻으로, 오징어·문어·갑오징어·앵무조개가 여기에 들어요.
속명 Architeuthis는 그리스어로 '으뜸가는 오징어'라는 뜻이에요. 1857년 덴마크의 동물학자 야페투스 스텐스트루프가 해안에 떠밀려 온 부리와 조각을 연구해 이 속을 처음 기재했어요. 한국어 '대왕오징어'는 큰 몸집을 강조한 이름이에요.
과거에는 세계 여러 바다에서 발견된 대왕오징어에 20종 가까운 학명이 붙었어요. 발견 장소와 몸의 비율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2013년 세계 각지의 표본 40여 개체의 DNA를 비교한 연구에서 유전적 차이가 매우 작다는 결과가 나와, 지금은 전 세계에 Architeuthis dux 한 종만 있다고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져요. 다만 일부 학자는 여전히 여러 종이 있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어요.
'가장 큰 오징어'라는 타이틀을 두고 자주 비교되는 동물이 남극해의 대왕하늘오징어(콜로설 스퀴드, Mesonychoteuthis hamiltoni)예요. 대왕오징어가 더 길고 날씬하다면, 대왕하늘오징어는 길이는 비슷하거나 조금 짧지만 훨씬 육중해서 무게로는 더 무거워요.
3. 진화
두족류의 역사는 5억 년 전 캄브리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초기 두족류는 원뿔 모양의 단단한 껍데기를 가지고, 껍데기 속 공간에 기체를 채워 물에 뜨는 동물이었어요. 고생대와 중생대 바다를 지배했던 앵무조개류와 암모나이트가 그 후손들이에요.
오징어와 문어가 속한 초형아강(콜레오이드)은 껍데기를 몸 안으로 감추거나 거의 없애는 방향으로 진화했어요. 오징어 몸속에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같은 뼈, '연갑(글라디우스)'은 바로 옛 껍데기의 흔적이에요. 껍데기를 버린 대신 빠르게 헤엄치고, 몸 색을 바꾸고, 복잡한 뇌를 가진 사냥꾼이 되었어요. 중생대에는 오징어를 닮은 벨렘나이트가 바다에 아주 많았고, 그 화살촉 모양의 화석이 지금도 흔하게 발견돼요.
대왕오징어과가 언제 갈라져 나왔는지는 화석이 거의 없어 확실하지 않아요. 물렁한 몸은 화석으로 남기 어렵고, 부리와 평형석 정도만 드물게 남기 때문이에요.
심해의 거대한 몸집이 왜 진화했는지에 대해서는 '심해 거대증'이라는 현상이 거론돼요. 차가운 물, 높은 압력, 드문 먹이 환경에서 몸이 크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고 오래 버티는 데 유리하다는 해석이에요. 대왕오징어의 큰 눈은 천적인 향유고래를 멀리서 알아보기 위해 진화했다는 연구도 있어요.
4. 분포와 서식지

SSR2000 · CC BY-SA 3.0
대왕오징어는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 바다에서 발견되었어요. 특히 표본이 많이 나온 곳은 이래요.
-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바다
- 일본 근해(오가사와라 제도, 동해 쪽 해안)
- 북대서양(노르웨이, 아일랜드, 스페인 북부, 뉴펀들랜드)
- 남아프리카 연안
- 멕시코만
주로 대륙붕 가장자리와 대륙사면, 해산 주변처럼 깊은 바다로 떨어지는 경사진 곳에서 많이 발견돼요. 생활 수심은 대략 300~1,000m 사이로 추정되는데, 햇빛이 거의 닿지 않는 '박광층(트와일라잇 존)'이에요. 수온은 대체로 낮고 일정한 곳이에요.
일본 동해 연안에서는 겨울철에 대왕오징어가 해안이나 정치망에 떠밀려 오는 일이 종종 보도되었어요. 2014~2015년 겨울에는 도야마만 등에서 이례적으로 많은 개체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어요. 원인으로 수온 변화가 거론되었지만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어요. 대왕오징어가 따뜻한 표층수에 올라오면 몸의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져 약해진다는 가설도 있어요.
한국 근해에서 대왕오징어가 확인되었다는 공식 기록은 매우 드물어요. 동해가 깊은 바다이긴 하지만, 대왕오징어가 정기적으로 사는 곳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아요.
5. 신체 특징
대왕오징어의 크기는 과장되기 쉬워요. 해안에 떠밀려 온 사체는 근육이 늘어나 실제보다 길게 측정되기도 하고, 오래된 기록 중에는 근거가 약한 것도 많아요. 신뢰할 만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대략적인 크기는 이래요.
| 항목 | 암컷 | 수컷 |
|---|---|---|
| 촉완 포함 전체 길이 | 최대 약 12~13m | 최대 약 10m |
| 외투막 길이(몸통) | 최대 약 2~2.5m | 이보다 작음 |
| 몸무게 | 최대 약 250~275kg | 최대 약 150kg 안팎 |
| 눈 지름 | 약 25~27cm |
일반적으로 암컷이 수컷보다 크고 무거워요. 20m 가까운 길이가 기록되었다는 옛 이야기들도 있지만,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례는 없어요.
몸은 몸통 역할을 하는 외투막, 머리, 그리고 머리에 붙은 팔 8개와 촉완 2개로 이루어져요. 촉완은 다른 팔보다 훨씬 길어 전체 길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끝부분이 넓게 펴진 '촉완곤봉'에 빨판이 몰려 있어요. 빨판 가장자리에는 톱니 모양의 단단한 고리가 있어 먹이를 놓치지 않게 해요.
대왕오징어의 눈은 지름이 25cm를 넘어 농구공에 가까운 크기예요. 대왕하늘오징어와 함께 동물계에서 가장 큰 눈으로 꼽혀요. 큰 눈은 빛이 거의 없는 심해에서 희미한 빛을 모으는 데 유리해요.
몸에는 염화암모늄이 섞인 체액이 많아요. 염화암모늄은 바닷물보다 가벼워 대왕오징어가 힘들이지 않고 물에 떠 있게 도와줘요. 대신 고기에서 쓴맛과 암모니아 냄새가 나서 식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어요. 피에는 구리가 든 헤모시아닌이라는 단백질이 있어 산소를 운반하고, 그래서 피가 파란빛을 띠어요. 심장은 세 개예요.
6. 생태와 습성

Mike Goren from New York · CC BY 2.0
대왕오징어의 일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지금까지 얻은 단서는 몇 차례의 촬영 기록과 사체 분석에서 나왔어요.
2004년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의 구보데라 쓰네미와 오가사와라 고래 관찰 협회의 모리 교이치는 오가사와라 제도 근처 수심 약 900m에 미끼와 카메라를 내려, 살아 있는 대왕오징어가 미끼에 달려드는 모습을 연속 사진으로 처음 찍었어요. 이 사진에서 대왕오징어는 촉완으로 미끼를 감싸고 몇 시간 동안 버티다 촉완 한 개를 끊고 달아났어요. 이 기록은 대왕오징어가 느릿느릿 떠다니는 동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냥하는 동물이라는 증거가 되었어요.
2012년에는 일본과 미국 공동 취재팀이 잠수정을 타고 같은 해역에서 자연 상태의 대왕오징어를 영상으로 촬영했고, 이 영상은 2013년 방송되어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어요. 2019년에는 멕시코만에서 미국 연구팀이 빛을 내는 해파리를 흉내 낸 미끼 조명 카메라로 어린 대왕오징어를 촬영했어요.
이런 기록을 종합하면 대왕오징어는 혼자 생활하며, 수심 수백 m에서 머리를 아래로 두고 팔을 늘어뜨린 채 기다리다가 먹이가 다가오면 촉완을 뻗어 잡는 매복 사냥꾼일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이동 범위, 하루 수심 이동, 무리 생활 여부는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7. 먹이
대왕오징어의 위 속 내용물을 분석한 결과, 주된 먹이는 심해성 물고기와 다른 오징어로 밝혀졌어요. 뉴질랜드 근해 표본에서는 호키(대구목 물고기) 같은 심해어와 오렌지러피, 그리고 같은 대왕오징어의 조각이 나오기도 해서, 동족을 잡아먹는 일도 있을 것으로 보여요.
사냥할 때는 두 개의 긴 촉완을 빠르게 뻗어 먹이를 낚아채요. 촉완 끝 빨판의 톱니 고리가 미끄러운 먹이를 붙잡고, 이후 짧은 팔 8개로 먹이를 감싸 입으로 가져가요. 팔과 촉완이 둘러싼 한가운데에 앵무새 부리처럼 생긴 단단한 부리가 있어 먹이를 잘게 잘라요.
입 안에는 '치설'이라는 줄 모양의 혀가 있어 잘린 먹이를 목 쪽으로 밀어 넣어요. 오징어류는 식도가 뇌를 통과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먹이를 아주 잘게 잘라 삼켜야 해요. 덩어리가 너무 크면 뇌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대왕오징어가 하루에 얼마나 먹는지, 얼마나 자주 사냥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아요.
8. 번식과 일생

대왕오징어의 번식은 거의 관찰된 적이 없어, 대부분 사체를 해부해 얻은 정보로 추정해요.
수컷은 매우 긴 생식기(음경)를 가지고 있는데, 일부 표본에서는 외투막 길이에 맞먹을 만큼 길었다고 해요. 수컷은 정자 꾸러미(정포)를 암컷의 팔 피부에 박아 넣는 것으로 보여요. 실제로 암컷의 팔 피부 속에 정포가 박혀 있는 표본이 발견되었어요. 이후 암컷이 정자를 어떻게 이용해 수정하는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지만, 정자가 스스로 피부를 뚫고 나오거나 암컷이 부리로 피부를 찢어 꺼낸다는 가설이 있어요.
암컷은 매우 작은 알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요. 한 암컷의 난소에서 수백만 개의 알이 나온 기록도 있어요. 다른 살오징어류처럼 알을 젤리 같은 큰 덩어리에 담아 물속에 띄워 보낼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제로 대왕오징어의 알 덩어리가 확인된 적은 거의 없어요. 바다에서 채집된 아주 작은 새끼(유생)가 대왕오징어로 확인된 사례가 몇 건 있어요.
| 항목 | 알려진 내용 |
|---|---|
| 성숙 | 정확한 나이 불명, 빠르게 자라 몇 년 안에 성숙하는 것으로 추정 |
| 알 | 매우 작고 수가 많음(수백만 개 수준 추정) |
| 새끼 | 몇 mm 크기의 플랑크톤 단계로 시작 |
| 수명 | 평형석 분석 등으로 5년 미만으로 추정하는 연구가 많음 |
오징어의 나이는 귀 속의 작은 돌인 '평형석'에 생기는 나이테 같은 줄을 세어 추정해요. 대왕오징어 평형석 연구에서는 예상보다 나이가 어리게 나와, 몇 년 사이에 수십 cm에서 10m 가까이 자랄 만큼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해석이 나왔어요. 많은 오징어처럼 대왕오징어도 한 번 번식하고 죽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확실하지 않아요.
9. 지능·감각·특별한 능력
두족류는 무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큰 뇌를 가진 무리예요. 문어의 문제 해결 능력은 잘 알려져 있지만, 대왕오징어의 지능에 대해서는 연구할 방법이 거의 없어 알려진 것이 없어요.
대왕오징어의 가장 특별한 감각기관은 거대한 눈이에요. 2012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이렇게 큰 눈이 먹이를 찾는 데보다, 다가오는 향유고래를 멀리서 알아보는 데 특히 유리하다는 계산 결과가 제시되었어요. 심해에서 향유고래 같은 큰 동물이 움직이면 주변의 발광 플랑크톤이 자극을 받아 빛을 내는데, 큰 눈은 이 희미하고 넓게 퍼진 빛을 120m 넘는 거리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덕분에 도망칠 시간을 벌 수 있어요.
대왕오징어도 다른 오징어처럼 피부에 색소세포가 있어 몸 색을 바꿀 수 있어요. 2012년 영상 속 대왕오징어는 은빛과 금빛이 섞인 금속 같은 광택을 띠었어요. 먹물주머니가 있어 위협을 받으면 먹물을 뿜을 수 있는 것으로 보여요.
이동할 때는 외투막 속에 물을 빨아들였다가 깔때기로 세게 뿜어내는 '제트 추진'과 몸통 끝의 지느러미를 함께 써요. 다만 염화암모늄으로 부력을 얻는 몸 구조로 보아, 장거리를 빠르게 헤엄치기보다는 천천히 떠 있다가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데 알맞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아요.
10. 천적과 생존
어른 대왕오징어를 사냥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천적은 향유고래예요. 향유고래는 수심 1,000m가 넘는 깊이까지 잠수해 오징어를 잡아먹는데, 잡힌 향유고래의 위에서 대왕오징어의 부리가 자주 발견돼요. 오징어의 부리는 단단해서 소화되지 않고 위 속에 쌓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부리를 세어 향유고래가 어떤 오징어를 얼마나 먹는지 연구해요.
향유고래의 머리와 몸에는 지름 수 cm의 동그란 빨판 자국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요. 대왕오징어가 저항하며 남긴 흔적으로 여겨지고, '향유고래와 대왕오징어의 심해 대결'이라는 이미지가 그림과 박물관 전시에 자주 등장해요. 하지만 실제 사냥 장면은 한 번도 촬영된 적이 없어요. 대부분의 경우 몸무게가 수십 톤인 향유고래가 일방적으로 우세할 것으로 보여요.
어린 대왕오징어는 다양한 물고기, 상어, 다른 오징어, 바닷새의 먹이가 될 수 있어요. 일부 고래(이빨고래류)와 잠꾸러기상어 같은 심해 상어도 대왕오징어를 먹는다는 기록이 있어요.
11. 인간과의 관계
11.1. 전설에서 과학으로
북유럽에서는 중세부터 크라켄이라는 거대한 바다 괴물 이야기가 전해졌어요. 18세기 노르웨이의 주교 에리크 폰토피단은 크라켄을 섬처럼 큰 동물로 묘사했어요. 오늘날 학자들은 바다 위에 떠오른 죽어 가는 대왕오징어, 또는 그 사체를 본 경험이 전설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봐요.
1861년 프랑스 군함 알렉통호가 카나리아 제도 근처에서 커다란 오징어를 만나 작살로 잡으려다 몸통 일부만 건져 올린 사건은 과학계에 대왕오징어의 존재를 알린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1870년대에는 캐나다 뉴펀들랜드 해안에 대왕오징어가 잇따라 떠밀려 왔고, 이때 박물학자들이 사진과 표본을 남기면서 대왕오징어가 실제 동물이라는 사실이 확고해졌어요.
이후 100년 넘게 대왕오징어는 죽은 모습으로만 알려진 동물이었어요. 2004년 첫 사진, 2006년 수면 근처에서 산 채로 끌어올린 개체 촬영, 2012년 자연 서식지 영상 촬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심해 탐사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 주는 이정표가 되었어요.
11.2. 어업과 사람
대왕오징어를 목표로 하는 어업은 없어요. 앞서 말했듯 몸에 염화암모늄이 많아 맛이 쓰고 식감도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어서예요. 다만 뉴질랜드와 일본, 스페인 북부 등에서는 심해 저인망이나 정치망에 우연히 걸려 올라오는 일이 있고, 이렇게 잡힌 개체는 연구용 표본으로 쓰여요.
한국 마트나 시장에서 '대왕오징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오징어 가공품은 대부분 대왕오징어가 아니라 남아메리카 연안에서 잡히는 훔볼트오징어(아메리카대왕오징어, Dosidicus gigas)예요. 훔볼트오징어는 몸길이가 1.5~2m 정도로 크고, 오징어채나 구이용 가공품의 주요 원료로 쓰여요. 이름 때문에 헷갈리기 쉽지만 전혀 다른 종이에요.
12. 보전 현황
대왕오징어는 IUCN 적색목록에서 최소관심(LC)으로 평가되었어요. 전 세계 바다에 널리 분포하고, 향유고래가 먹는 양으로 미루어 보아 상당히 많은 수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에요. 다만 개체 수를 직접 세는 것은 불가능해서, 정확한 숫자나 증감 추세는 알려져 있지 않아요.
대왕오징어를 직접 노리는 어업이 없으므로 큰 위협은 없다고 보지만, 다음과 같은 간접적인 영향이 거론돼요.
- 심해 저인망 어업에 의한 우발적 포획과 서식지 교란
- 바다 온난화와 산소 부족 해역의 확대
- 해양 탄성파 탐사 등 강한 수중 소음: 2001년과 2003년 스페인 북부 해안에서 대왕오징어가 잇따라 떠밀려 왔을 때 근처의 탄성파 탐사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어요.
- 심해 채굴 같은 새로운 개발
한국 법에서 대왕오징어는 보호종이 아니며, 국내 법적 지위는 따로 없어요.
13. 박물관과 수족관에서
살아 있는 대왕오징어를 수족관에서 기른 사례는 없어요. 심해의 낮은 수온과 높은 수압, 어둠을 재현하기 어렵고, 잡혀 올라온 개체는 대부분 이미 죽었거나 곧 죽기 때문이에요. 수면 가까이 올라온 대왕오징어를 잠시 수조에 넣어 관찰한 기록은 있지만 오래 살지 못했어요.
대신 여러 자연사 박물관이 포르말린이나 특수 용액에 담근 대왕오징어 표본을 전시해요. 영국 런던 자연사 박물관,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뉴질랜드 국립박물관, 일본 국립과학박물관, 스페인의 오징어 전문 박물관 등이 대왕오징어 표본으로 유명해요. 거대한 유리 수조 속 표본은 많은 관람객에게 심해를 상상하게 하는 인기 전시물이에요.
표본을 오래 보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커요. 몸이 크고 물렁해서 보존액이 고르게 스며들기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고 모양이 변해요. 최근에는 표본 대신 정밀한 실물 크기 모형이나 3D 스캔 자료를 함께 전시하는 곳도 늘고 있어요.
14. 대중문화 속 대왕오징어
대왕오징어는 바다 괴물의 대명사예요.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 리』(1870)에서 노틸러스호 승무원들이 거대한 오징어 떼와 싸우는 장면은 가장 유명한 대왕오징어 묘사 가운데 하나예요. 이 장면은 1954년 디즈니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았어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도 바다 위에 떠오른 거대한 오징어를 보고 선원들이 불길한 징조로 여기는 장면이 나와요.
크라켄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와 『타이탄』 등에 거대한 괴물로 등장했고, 게임과 판타지 소설에서도 단골 보스 몬스터예요. 미국 프로 아이스하키 팀 시애틀 크라켄처럼 스포츠 팀 이름으로도 쓰여요.
한국과 일본에서도 대왕오징어는 다큐멘터리와 과학 서적의 인기 주제예요. 2013년 일본 방송사가 대왕오징어 영상을 공개했을 때 큰 화제가 되었고, 대왕오징어를 주인공으로 한 과학 그림책과 애니메이션도 만들어졌어요.
'크라켄'이라는 이름은 이제 거대하고 미지의 힘을 상징하는 말로 널리 쓰여요. 컴퓨터 소프트웨어, 맥주, 롤러코스터 이름에도 쓰일 만큼 친숙해졌어요.
15. 여담
- 대왕오징어의 뇌는 도넛처럼 식도를 둘러싸고 있어요. 그래서 먹이를 크게 삼키면 뇌가 다칠 수 있어요.
- 2025년에는 남극해에서 대왕하늘오징어의 어린 개체가 자연 상태에서 처음으로 영상에 찍혔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대왕오징어 첫 촬영 후 약 20년 만에 또 다른 거대 오징어의 살아 있는 모습이 기록된 셈이에요.
- 대왕오징어의 빨판 고리 자국은 지름 수 cm 정도예요. 향유고래 몸에 그보다 훨씬 큰 자국이 있다는 이야기는 고래가 자라면서 흉터도 함께 늘어났기 때문일 수 있어요.
- 오징어류는 피가 파랗고, 심장이 세 개예요. 두 개는 아가미로, 한 개는 온몸으로 피를 보내요.
- 일본에서는 산갈치 같은 심해 생물이 바닷가에 떠밀려 오면 지진의 전조라는 속설이 있고 대왕오징어가 발견될 때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곤 하지만, 과학적인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어요.
- 대왕오징어의 촉완 하나가 몸통보다 몇 배나 길어서, 전체 길이만으로는 실제 덩치를 짐작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학자들은 외투막 길이를 기준으로 크기를 비교해요.
야생동물은 반려동물이 아니에요. 포획·거래·사육은 대부분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다친 야생동물을 발견하면 지역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연락하세요.
자주 묻는 질문
마트의 '대왕오징어'가 이 동물인가요?
아니에요. 시중의 대왕오징어 가공품은 대부분 남미 연안의 훔볼트오징어예요. 진짜 대왕오징어는 염화암모늄 때문에 맛이 써서 식용으로 잡지 않아요.
대왕오징어와 대왕하늘오징어 중 누가 더 커요?
길이는 대왕오징어가 비슷하거나 더 길 수 있지만, 무게는 몸이 육중한 대왕하늘오징어가 더 무거워요.
대왕오징어가 배를 공격하나요?
그런 일이 확인된 적은 없어요. 크라켄 전설은 바다 위로 떠오른 죽어 가는 대왕오징어를 본 경험에서 과장되었을 것으로 봐요.
사진 출처
사진은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의 자유 이용 허락 사진이에요. 각 사진의 작가와 라이선스는 아래와 같아요.
- Giant squid Ranheim.jpg — NTNU Vitenskapsmuseet · CC BY 2.0
- A piece of sperm whale skin with Giant Squid sucker scars.JPG — NASA · Public domain
- Architeuthis sanctipauli in National Museum of Natural Science, Taichung, Taiwan.JPG — SSR2000 · CC BY-SA 3.0
- Display of sperm whale and giant squid battling in the Museum of Natural History.jpg — Mike Goren from New York · CC BY 2.0
- Giant squid (Architeuthis sanctipauli) replica in Muséum national d'histoire naturelle (France).jpg — Stephanemartin · CC BY-SA 3.0



